그 어느 때보다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확대된 오늘날, 한국 공예를 향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 예술 서적 전문 출판사 파이돈(Phaidon)이 한국 공예와 디자인을 조망하는 비주얼북 ‘Jeong: The Spirit of Korean Craft and Design’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전통 공예품부터 현대 작가 33인의 작품을 아우르며 한국 디자인의 흐름과 미학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책이다.
출간에 맞춰 서울 곳곳에서는 책에 소개된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과 안국동 아름지기 한옥, 창성동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등 세 개의 전시 공간에서 책에 소개된 공예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면에 수록된 작가들의 대표작은 물론 다양한 작품을 함께 소개해 한국 공예의 과거와 현재를 폭넓게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양태오 작가가 소장한 삼국시대 잔부터 김민재 작가가 한국적 요소를 재치 있게 풀어낸 흔들의자, PVC 소재를 짜서 만든 이광호 작가의 현대적 의자까지 전통 공예의 유산이 현대 디자인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공예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는 한국인의 ‘정(情)’이 제시됐다. 정은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이자, 이번에 선보인 책과 전시의 중심 주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재단법인 아름지기 정소영 큐레이터는 “책의 주요 저자인 이효정 그래픽 디자이너는 정을 한국 공예를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로 바라봤다”며 “작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완성하는 공예품에 쌓이는 감정과 사용자가 공예품을 길들이며 형성하는 관계성을 ‘정’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에서 열리는 전시는 어두운 공간 속 하얀 벽에 뚫린 네모난 창을 마주하며 시작된다. 창 너머로는 루이 비통과 자라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며 이름을 알린 민현우 사진작가의 작품 6점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희미하던 사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선명한 형상을 드러낸다.
이는 한국인의 정이 쌓이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장치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정’의 개념을 사진 인화 과정에 빗댄 것이다. 사진이 현상 직후에는 흐릿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또렷한 모습을 드러내듯, 정 또한 단번에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스며들면서 쌓이는 관계의 감각을 표현했다.
민현우 작가는 이효정 디자이너와 함께 1년간 서울 외곽을 누비며 한국인의 정이 깃든 풍경을 담했다. 처음 만난 노부부의 집에서 벗어놓은 고무신과 빨간 고무 대야, 빗자루와 같은 일상의 장면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그가 촬영한 사진 작업은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 전시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 생가였던 안국동 한옥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개방하는 공간으로, 아름지기 재단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한국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외뜨개 한지에 인화한 사진 3점이 전성임, 김선태, 문범 등 공예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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