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취업한 한국 과학인재 14만명…대덕특구 3개 채울 연구자들 사라졌다

8 hours ago 4

[이미지 = CHAT GPT]

[이미지 = CHAT GPT]

“우리나라 최상위 학생들은 다 외국 명문대 공대로 갑니다.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죠.”

미국 현지에서 취업한 한국인 과학기술계 인재가 14만4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 인재 허브로 꼽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연구자 4만4000명 대비 3배 넘는 숫자다. 외국에 정착한 한국인 과학기술 인재 규모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매일경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5월 발표한 ‘2024 주요 과학기술인력 통계’를 분석한 결과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 터를 잡은 한국인 과학기술계 인재는 2019년 12만7000명에서 2023년 14만4000명으로 13.4% 늘었다.

이번 통계는 한국 태생인 미국 대학 졸업자만 따졌다.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행 취업길에 오른 이들까지 합치면 한국 대신 미국 취업을 택한 과학기술 인재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사급 이공계 고급 두뇌 유출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해 1000명 안팎으로 배출되는 미국 박사 학위 취득 한국인을 대상으로 2018~2021년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을 넘는 50.3%가 미국에 남겠다고 답했다. 2010~2013년 진행한 같은 설문에서 41.3%에 그쳤던 것에 비해 10%포인트 늘었다.

사진설명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인재들의 맹활약상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을 택한 이유가 국내 생태계가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문제다. 미국 산업계는 한국 교수 연봉 대비 최대 10배에 달하는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 과학기술 인재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인재들도 한국행을 꺼리고 있다. 교수(E-1) 비자를 가진 외국인 수는 2020년 2053명에서 지난해 1802명으로 줄었다. 연구(E-3) 비자 인원도 3000명대로 지지부진하다. 미국 외에 유럽 등으로 유출된 인원까지 합치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과학기술계 혁신 리더들은 도전을 가로막는 산업 생태계와 관 주도 방식의 연구개발(R&D) 지원, 도전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보상 구조,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 부재 등을 과학기술 인재가 유출되는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진단했다. 이어 이들은 “이제는 실패를 딛고 도전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통해 ‘빅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김정상 아이온큐 창업자…인재에 대한 투자는 비용 아냐

김정상 듀크대 전기컴퓨터공학과·물리학과 교수(아이온큐 창업자)는 “지금 한국은 인재 양성과 유치라는 이중 구조에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우수 인재 이탈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IMF 사태 이후 ‘안정 추구’가 최고의 가치로 굳어진 것 같다”며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첨단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계속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시장 첨단 인재 확보와 육성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비용이 아닌 ‘시장 개척의 시작점’으로 보는 데 대해 김 교수는 “한국 기업 중 그런 전략과 실행력을 갖춘 곳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정상 듀크대 전기컴퓨터공학과·물리학과 교수(아이온큐 창업자)

김정상 듀크대 전기컴퓨터공학과·물리학과 교수(아이온큐 창업자)

구현모 前 KT 대표…국가 차원 ‘빅프로젝트’ 키워야

구현모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는 국내 과학기술계 인재 유출의 심각성에 대해 단적으로 “요즘 한국 학계에서는 교수가 되기 쉬워졌다고 얘기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인재를 영입할 묘책을 묻자 구 교수는 “해외에 한국이 인재 공급처 역할을 했다”면서 “예전처럼 인재를 양성했다고 국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이제는 ‘인재 유지(Retention)’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국가 차원의 빅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공계 인재들이 도전해보고 싶을 만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구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추진 중인 ‘월드 베스트 대형언어모델(LLM)’ 같은 사업은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며 “그래야 국내 기업과 스타트업, 학계의 최정상급 인재들이 여기에 도전할 것이고, 인재들을 한국에 발붙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현모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

구현모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

석차옥 서울대 교수…과학 AI 분야 정책적 지원 절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신약 개발 스타트업 갤럭스 대표)는 ‘과학 인공지능(AI)’에 정책적 자원 투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언어모델에서 시작한 범용 AI에 (한국) 인재들이 대거 유출되고 있는데, 이 문제가 과학 AI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까지 AI 관련 연구자들이 수상하며 AI가 끼치는 과학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 과제를 설정하고 어떻게 국가 경쟁력을 키울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만들되 행정 중심적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전문가가 포진해 운영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첨단 산업과 AI 기술 발전으로 변화할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특히 과학과 다른 분야들을 융합하는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