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세대 간 정의' 고민해야 할 자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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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세대 간 정의' 고민해야 할 자본시장

현대 정의론은 ‘세대간 정의’에 주목한다. 현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도덕적 의무를 부담할 것을 주문하는 개념이다. 청년세대도 유한한 자원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성세대의 배분적 행동을 강조한다.

포퓰리즘이 나쁜 것도 세대 정의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본질은 ‘후대의 몫을 당겨쓰는 것’이다. 지금 가불하고 미래에 갚는 구조이다 보니 ‘세대 간 불공정’이 필연이다. 재정·연금 포퓰리즘이 촉발하는 세대 갈등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코스피지수가 축포 속에 연일 진군 중이지만 세대 정의라는 관점에서는 역주행이 많다. ‘주가 희석 리스크를 단 한 톨도 질 수 없다’며 증시 핵심 기능인 유상증자까지 범죄시하는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삼성SDI,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곤욕을 치른 데 이어 최근 한화솔루션도 도마에 올랐다.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대주주도 큰돈을 집어넣고 구구절절 읍소에 나섰다. 소소한 이해관계에 매몰돼 우리 세대에 부여된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소액주주들이 맹비난 했던 삼성SD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는 1년도 안 돼 대박을 쳤다.

세대 정의에 무관심하기는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는 얼마 전 ‘중복 상장 원칙 금지’라는 핵폭탄을 터뜨렸다. 7월부터 상장사 계열사는 웬만하면 상장시켜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해외 상장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미래세대를 위해 소를 키우고 밭을 갈아야 할 의무 당사자가 ‘주가 올리기’ 정책에 올인하는 듯해 볼썽사납다.

추가 상장이 없으면 주식 공급이 줄어 코스피에는 호재다. 하지만 시장 경제에서 핵심 인프라인 증시 자본조달 기능의 개점휴업으로 주요 성장 경로에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양질의 자금조달에 목마른 기업은 광야로 내몰릴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만 해도 핵심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이 불투명해지고 현대카드 상장 구상을 접어야 할 판이다. ‘제조 코리아’ 주축으로 부상한 LS, HD현대 그룹, 플랫폼 최강자 네이버 등도 중장기 판을 힘겹게 다시 그려야 한다. 상장을 조건으로 자금을 유치한 주요 대기업에 날아들 상환청구서만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래세대에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떠넘기는 자본시장 구도는 세대 정의에 정확히 역행한다. 중복 상장 금지론자들은 자회사 실적 중복 계상(더블카운팅)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제기하지만 아직 가설 수준이다. 중복 계상은 모회사 실적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회계 기법에 불과하다. 기업가치 평가에 혼선을 야기한다면 별도로 공시되는 모회사 개별재무제표를 참조해 다시 밸류에이션하면 될 일이다. 일본, 미국, 유럽에선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의 주가 할인 현상이 목격되지 않고 문제 삼는 분위기도 아니다.

세 차례 상법개정도 세대 정의에 눈감은 방향 착오다. 대대적 개편이 경영권 분쟁을 촉발해 주가를 밀어 올릴 소지는 있다. 하지만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는 방향이라 미래세대가 성장의 과실을 향유할 기회를 잃는 등 세대 차별적 요소가 다분하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어느 선진국도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3% 룰,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강제 소각 조항을 두지 않는 이유다.

‘대주주 약화=선’이라는 도그마도 미래세대의 기대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큰 주주 포퓰리즘이다. 선진국에선 외려 대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일이 허다하다. 구글 창업자들은 의결권 10주짜리 주식(B주)을 받아 절반 이상 의결권을 행사한다. 단기 수익 추구를 요구하는 외부 투자자에게 흔들리지 않고 장기 비전과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메타(마크 저커버그)와 스페이스X(일론 머스크) 주주도 구글 주주처럼 ‘차등의결권 부여’를 선택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최강 경제’ 그대로 미래세대로 넘겨야 한다는 동시대 미국인의 부채의식과 책임감이 감지된다.

“정의로운 사회는 각 세대가 서로를 책임지는 사회”(마이클 샌델)다. 개인투자자의 평균 포트포리오 유지 기간이 9일에 불과한 상황에서 주주 포퓰리즘으로의 경도는 무책임한 선택이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죽고 말 것입니다.” (KKR 설립자 제롬 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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