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과 함께 지킨 한양”…서울역사박물관 ‘여민공수’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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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백성은 다 나의 적자(赤子·임금이 백성을 이르던 말)인데, 어찌 난리에 임하여 보전할 도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1710년 10월 조선 숙종이 한 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국왕과 조정만 피란하는 방식으로는 수도도 백성도 지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도성을 버리지 않고 백성과 함께 지키겠다는 국왕의 각오는 새로운 수도 방어 체계로 이어졌다.이런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 ‘여민공수(與民共守), 백성과 함께 지킨다’가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1부는 숙종과 영조의 도성 방어 의지를 다루고, 2부는 한양도성 북한산성 탕춘대성으로 이어지는 방어 전략으로 구성됐다. 경조오부도, ‘동여도’.‘동여도’는 김정호(金正浩)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제작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축척 필사본 전국지도이다. 도성과 북한산성이 잘 나타나 있다. 전시에선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자세히 묘사한 전국지도 ‘동여도(東輿圖)’(보물), 수성의 핵심 무기였던 화포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보물) 등이 눈길을 끈다. 유물과 모형, 영상을 더해 조선 후기 수도 방어 체계가 완성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방어의 기본은 한양도성이었다. 조선은 도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며 적을 감시·공격하는 총안(銃眼), 성문을 보호하는 옹성(甕城) 등을 갖췄다. 도성 배후에는 유사 시 왕실과 백성이 들어가 장기 항전할 입보성(入保城)으로 1711년 북한산성을 쌓았다. 여기에 두 성을 잇는 연결성인 탕춘대성이 더해지며 견고한 수도 방어망 ‘한양의 수도성곽’이 완성됐다.조선 후기로 가면서 직업 군인 중심의 오군영 체제가 갖춰졌지만 성을 지키는 일은 백성 모두의 몫이기도 했다. 영조는 1751년 ‘수성윤음(守城綸音)’을 반포해 유사 시 한성부 백성들도 정해진 위치에서 도성 수비에 참여하도록 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 김도연 기자 repokim@donga.com©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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