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중미를 가다
‘치안 혁명’ 엘살바도르
부켈레, 범죄자 9만여명 소탕
살인율 10년새 100분의 1로
밤 10시 거리에 아이들 북적
관광객 증가·구글 유치 결실
인프라 사업에 수천억원 투입
도로·하수시설 환골탈태 박차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외곽에 자리 잡은 국제공항.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과 그의 부인 사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공항 안팎에서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한 시민은 “가장 위험했던 나라였던 엘살바도르가 지금은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세계 최악의 살인율로 악명 높았던 엘살바도르가 ‘치안 혁명’을 바탕으로 경제 대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17일 현지 당국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107.6명에 달했던 2015년 살인율은 지난해 1.3명으로 급감했다. 2019년 취임한 부켈레 대통령이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범죄자 9만여 명을 소탕한 결과다.
치안 확보는 곧바로 경제지표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살바도르 밤거리는 시민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며 24시간 개방되는 국립도서관은 국가 안전의 상징이 됐다. 2019년 180만명 수준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410만명으로 2배 이상 폭증했으며 구글 등 글로벌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 현지에 빌딩을 세우는 등 해외 자본 유치도 활발하다.
부켈레 대통령이 치안에 집중하는 이유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다.
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안전이 필수다. 부켈레 대통령은 2022년 3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시내로 들어오니 구글 빌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2년 전인 2024년 4월 구글은 산살바도르에 빌딩을 짓고 입주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구글 개소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애착을 보였다.
산살바도르 한복판에 구글을 유치한 건 부켈레 정책 효과를 입증한다. 부켈레 효과는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 중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취임한 라우라 페르난데스 델가도 코스타리카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마약 밀매가 우리 시스템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토요일 밤 10시. 우버를 타고 산살바도르 시민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갔다.
우버 기사 엑토르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이 시간에 외국인이 혼자 밖에 나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자유광장과 국립도서관은 수많은 시민으로 가득했다.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시민도 많았다.
인상적인 건 국립도서관이었다. 24시간 개방하는 이곳은 엘살바도르가 안전한 나라가 됐다는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연신 반짝이는 조명이 광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한국은 엘살바도르 개발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방문한 산살바도르 위곽 로스초로스 도로 공사 현장. 왕복 4차로 도로를 8차로로 확장하기 위해 굴착기들이 연신 굉음을 내며 땅을 옆으로 넓히고 있었다. 1공구 최고 난공사 현장이다.
이곳 시공을 책임지고 있는 신연성 동부건설 차장은 “아포파 지역에서 발주가 나올 4000억원 규모의 추가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에도 참여하려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초로스 프로젝트는 총사업비가 4억1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달한다. 엘살바도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 사업이다.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카베이)와 한국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자금이 투입됐다. 공사는 2029년에 종료될 예정이다.
발주처인 엘살바도르 공공사업교통부(MOPT) 관계자는 “공사가 끝나면 산살바도르로 향하는 교통 혼잡도와 차량 운영 비용을 줄이고 물류를 개선하며 산사태 위험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서 “엘살바도르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범죄 국가 오명을 떨쳐내고 있는 엘살바도르는 경제 도약을 위한 인프라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카베이는 핵심 금융 플랫폼으로서 전체 외부 자금 조달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특히 엘살바도르는 카베이 대출 포트폴리오 중 약 21%인 26억8600만달러를 차지할 정도로 최대 수혜국 자리를 최근 10년간 유지하고 있다.
라울 카스타네다 엘살바도르 카베이 사무소장은 “현재 도로, 학교, 종합경기장, 의료센터, 식수·하수처리시설 등 12개 프로젝트 현장에 자금이 지원됐다”며 “연평균 5억달러 수준의 프로젝트 승인이 이뤄질 정도”라고 말했다. 엘살바도르 국내총생산(GDP)이 대략 350억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카스타네다 소장은 “한국 기업의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기술력을 엘살바도르 현장에 적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1억8500만달러 규모의 굴루차파 상수도 시스템 현대화 사업도 올해 안에 엘살바도르 의회 승인을 거쳐 입찰 공고가 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사업에는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살바도르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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