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김연서 기자] 장미대선 이후 STO(Security Token Offering·토큰증권 발행) 시장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까지 법제화 기대감이 컸던 시장은 계엄 사태 이후 논의가 멈추며 정체 상태로 들어갔다. 국회의 법안 처리, 금융당국의 조각투자 제도화, 신규 사업자 확대, 벤처캐피털(VC·벤처 투자회사) 투자 재개 등이 맞물려야 시장이 재정비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금융자산 토큰화의 기대효과와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실물자산 토큰’의 전 세계 거래액이 올해 3월 말 기준 199억2000만달러(한화 약 28조3614억원)에 달한다”며 금융자산을 대거 토큰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금융업계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물자산 토큰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시장은 조기 대선 등 정치적 이슈에 밀려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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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챗GPT) |
STO 법안 통과, 계엄 사태로 정체
STO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법제화 기대감이 고조돼 있었다. 2024년 12월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 주최로 열린 STO 정책 간담회에서는 “연내 STO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가 가능하다”는 낙관론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는 다수의 STO 법안이 계류 중이었고, 금융당국도 제도화 밑그림을 마무리하며 속도를 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같은 달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정치적 사건이 터지면서 STO 법안 논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급박하게 돌아간 정국 속에서 금융 혁신 논의는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결국 법안 통과는 불발됐다. 이후 윤 대통령 탄핵과 경선 레이스 돌입, 이른바 ‘장미대선’까지 이어지며 정치권의 모든 관심은 대선으로 쏠렸다. 주요 대선 주자이 STO를 주요 공약으로 포함시키고 있지만 공약이 실현되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소요될지는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선 직후 STO 법 국회 통과 필요 탄핵부터 조기 대선까지 정치적 이슈들이 휘몰아치자 STO 시장의 시계는 사실상 멈추게 됐다. 국회에는 국민의힘 발의 4건(자본시장법 개정안 2건, 전자증권법 개정안 2건), 더불어민주당 발의 8건(자본시장법 개정안 4건, 전자증권법 개정안 4건) 등 총 12건의 STO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야 모두 법안 내용에는 이견이 없지만, 정치권 내에서 우선순위를 끌어올릴 공감대가 부족해 처리되지 못했다.
업계는 이번 대선 직후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조각투자 시장 활성화는 법제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더 이상 진척되기 어렵다. 다양한 기초자산 기반 사업자들은 준비만 마친 채 발이 묶인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6월부터라도 국회가 STO 법안 논의를 재개하지 않으면 올해 안에 시장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STO 산업은 성장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원회 조각투자 제도화도 남은 과제
또 다른 관건은 금융위원회의 조각투자 제도화 작업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조각투자 사업자 가이드라인 마련, 투자자 보호 장치 확보, 발행·유통·보관 단계별 규제 정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오는 6월 중으로 조각투자 발행 라이선스를 신설하고, 이후에는 유통 라이선스까지 단계적으로 구축할 방침이다.
조각투자 사업은 미술품, 부동산, 지식재산권(IP) 등 다양한 기초자산을 토큰화해 다수의 투자자에게 분할 판매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는 제도적 공백 속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돼 왔다. 금융위는 이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사업자에게는 금융소비자 보호 및 내부통제, 자본금 요건 등을 부과하고, 투자자에게는 정보 제공과 손실 위험에 대한 명확한 고지 의무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러한 제도화가 차질 없이 이뤄져야만 STO 조각투자 시장이 정식 금융산업으로 편입될 수 있고, 법제화와 함께 시장 신뢰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제도가 늦어지면 업계는 사업 추진은 물론 외부 투자 유치까지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계획 실행력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새로운 스타트업 등장과 VC 투자 재개 돼야
대선 직후 시장이 되살아나려면 새로운 스타트업의 진출과 벤처캐피털(VC) 투자 재개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업계는 제도적 불확실성 속에 신규 사업자 진입과 외부 투자가 모두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올해 국내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신생 기업이나 플랫폼으로는 △토큰증권 플랫폼 ‘뉴밋’을 선보인 테사 △아시아 기반 조각투자 기업 ‘토큰아시아코리아’ △한국형 미술관 기반 STO 플랫폼 ‘아트렉스’ △미술품 조각투자 C2C 거래 플랫폼 ‘타르트’ 등이 꼽힌다. 이들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미술품, 부동산, 지식재산권(IP) 등 다양한 기초자산을 토큰화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대부분이 플랫폼 중심이거나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 국내에서 새로운 기초자산을 발굴하고 소싱하는 기업은 여전히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는 기존의 미술품·부동산 외에도 에너지, 콘텐츠 등 새로운 유형의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한 STO 상품이 다수 등장해야 시장의 성장성과 다양성이 확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금융당국이 연내 조각투자 발행·유통 라이선스 체계를 마련하고, 국회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제도적 기반을 닦아야 STO 시장의 혁신성에 주목하는 VC 업계의 투자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금은 제도가 없으니 VC들도 STO 시장을 주목하지 않지만, 법적·제도적 틀이 마련되면 혁신적인 상품과 기업에 투자하려는 자금이 다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