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내고 일본여행? 법에는 없는 병가제도 At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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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 내고 일본여행? 법에는 없는 병가제도 AtoZ

한 쪽에서는 말한다. “진짜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출근했어요. 그런데 안 아픈 것 같은 동료는 병가 내고 일본여행 갔어요”. 다른 쪽에서는 말한다. “아프면 쉴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아픈 것도 눈치 봐야 하나요?”. 또 다른 쪽에선 속으로 생각한다. ‘또 병가? 지난 달에도 병가냈던 그 직원… 이상하게 월요일만 아프네?” 아픈 사람은 쉬고 싶고, 일하는 사람은 억울하고, 기업 인사담당자는 혼란스럽다. 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지만, 사실 우리는 병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병가가 근로기준법에 근거가 없고, 개별 기업마다 다르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 병가 제도의 개념
병가 제도는 통상적으로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 사유에 따른 질병, 부상 등 사유’로 휴가를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공무원은 질병에 걸린 경우 연 60일의 범위에서 유급 병가를 받을 수 있다(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8조). 그러나, 근로기준법에는 업무관련성이 없는 질병이나 부상을 당한 근로자를 어떻게 처우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다. 제45조의 비상시 지급 조항에 “사용자는 근로자가 출산, 질병, 재해,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상한 경우의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임금 지급을 청구하면 지급기일 전이라도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임금 지급지일 전이라도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임금을 미리 지급한다는 의미일 뿐, 출근하지 못한 근로자에게 일하지 않은 기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처럼 병가는 법정 휴가가 아니며,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일할 수 없게 된 근로자에게 쉴 권리를 부여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배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각 사업장에서 재량으로 도입·운영하는 이른바 ‘약정 휴가’다. 따라서, 모든 사업장에서 반드시 병가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병가 제도가 없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병가를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병가는 유급인가
병가는 무급이 원칙이다. 병가 기간 동안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로자의 근로제공에 반대급부로 이행되어야 하는 사용자의 임금지급 의무도 면제가 되는 것이다. 다만,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서 유급으로 정한 경우, 그에 따라야 한다.

# 병가의 신청, 승인 및 이를 둘러싼 징계
병가의 신청 및 승인에 관해서도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따르면 된다. 통상 병가 신청 시에는 질병, 부상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진단서 등)의 제출을 명하고, 사용자가 재량에 따라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만 팩스로 보낸 후 임의로 병가를 사용한 것은 무단결근에 해당하고, 이를 이유로 한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한 바 있다(중노위 2009. 6. 12.자 2009부해325 판정).

한편, 병가를 얻은 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 성실의무 위반으로 징계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법원은 근로자가 질병으로 인하여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가능한 병가를 얻었음에도 요양을 취하지 않은 채 농성에 가담하여 병가를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복무규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서울고등법원 2001. 2. 8. 선고 2000누5397 판결).

# 병가와 연차휴가
고용노동부는 연차휴가 산정 시 질병으로 인해 휴직한 기간을 어떻게 산입할지에 대해서 기존 행정해석을 변경하여 “개인적 사정 등에 의한 질병휴직기간은 연차휴가 산정 시 결근으로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며, 근로관계의 권리·의무가 정지된 것으로 보아 소정근로일수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다(임금근로시간과-1736, 2021. 8. 4.). 다만, 그 출근율이 연간 소정근로일수에 대하여 80% 미만인 경우에는 비례해서 계산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임금근로시간과-1818, 2021. 8. 12.). 휴가는 휴직과는 다르고, 휴가기간 동안 근로관계가 정지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용자가 병가를 준 기간을 모두 출근한 것으로 보아 연차휴가를 계산하는 것도 곤란할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행정해석은 휴직 뿐만 아니라 병가에도 유추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결국 사업장 규범에서 정한 바에 따라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취업규칙에 ‘병가 사용 시 연차를 먼저 소진하도록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경우 그러한 규정을 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근로자 신청 없이 다음 해 발생할 연차휴가를 병가 사용 시 의무적으로 선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연차휴가 발생 여부가 불확정적이고, 근로자의 정신적·육체적 휴양기회 제공을 등을 위한 연차휴가의 취지에 반할 수 있으며 향후 발생할 연차휴가의 시기지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 고용노동부 해석이다(근로개선정책과-4027, 2014. 7. 18).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병가가 제도화된 사업장에서만 가능한 해석일 것이다. 즉, 근로자에게 병가 신청권이 있음에도 이를 연차휴가로 사용하게 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될 것이다. 만약 사업장에 병가 제도가 없다면 사용자는 병가를 줄 의무가 없으므로, 병가를 신청하는 근로자에 대해 근로자의 의사에 따라 연차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법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휴일의 유급처리
병가 기간 동안 유급휴일이 포함되어 있다면, 사용자는 해당 일의 임금을 지급해야 할까?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의 특별규정이 적용되려면 평상적인 근로관계가 전제되어 있어야 하며, 개인적인 사유에 의한 휴직 등으로 인해 근로자의 주된 권리·의무가 정지되어 근로자가 근로제공을 하지 않은 휴직기간 동안에는 원칙적으로 근로제공 의무와 대가관계에 있는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은 발생하지 않는바, 휴직기간 등에 포함된 유급휴일에 대한 임금 청구권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7다73277 판결 등). 이러한 해석도 휴직에 관한 것이지만 병가에 대해서도 유추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주일 내내 병가를 사용한 경우에는 주휴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임금지급 의무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주휴일 유급은 개근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병가 중에 공휴일이 있는 경우 그러한 공휴일은 유급으로 처리해 주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 병가 불승인과 직장 내 괴롭힘
병가 승인 여부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질병·부상의 원인, 정도, 회복가능성, 업무 차질 등을 고려해 재량으로 결정하는 것이므로, 병가의 불승인은 일반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하급심 판례 중에는 근로자가 장기간의 치료를 요하지만 유급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병가 허용 기간 내에서만 치료를 받겠다며 병가를 신청했는데, 사용자가 더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함을 이유로 휴직을 권고하며 병가를 반려하는 것은 급여 삭감의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에 해당하고, 비록 결과적으로는 병가 승인이 되었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병가 등 복지혜택을 쓰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가 발견된다(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23. 3. 8. 선고 2021가단123961 판결).

사업장에 병가 제도가 있다면 그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서로 배려하면서 악용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병가는 아픈 직원을 위한 배려지만, 그 제도를 악용하는 순간 조직 전체의 신뢰비용이 치솟기 때문이다. 아픈 직원도, 건강한 직원도 함께 지속가능한 리듬을 만드는 조직이 되어야 하겠다.

윤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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