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한국 개념미술 흐름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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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한국 개념미술 흐름 한자리에

입력 : 2026.06.29 11:28

국립현대 ‘이것은 개념미술이(아니)다’
눈으로 감상하는 대신 사유하는 예술
이건용·성능경 등 28명 작가 140여점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에서 참석자가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에서 참석자가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장 한복판에 두 개의 문이 놓여 있다. 한쪽 문에는 독일어로 예술을 뜻하는 ‘쿤스트(Kunst)’가 적혀 있고 손잡이가 다섯 개 달렸다. 반대편에는 삶을 뜻하는 ‘레벤(Leben)’이라는 글자만 있을 뿐 손잡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화분에서는 의자 다리 하나가 식물처럼 길게 자라고 있다.

안규철의 설치작품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의 모습이다. 예술의 문을 통과하려면 수많은 질문과 마주해야 하지만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답을 찾지 못하던 젊은 작가의 불안과 고민이 담겨 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고 삶은 무엇인가. 의자가 붕 떠 앉을 곳이 없는 무명 작가는 어떤 혼란을 느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것은 개념미술이(아니)다’는 이처럼 보는 미술을 넘어 사유하는 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개념미술은 작품의 외형이나 물질적 결과보다 작가의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시하는 장르다. 회화와 조각의 아름다움보다 언어와 사고, 철학적 사유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 시각 중심의 미술에서 언어와 개념 중심의 미술로 이동한 과정을 조명한다.

단색화, 해프닝과 같이 관념적인 미술을 포함하지 않았다. 배명지 학예연구관은 “개념미술은 작가의 사고와 아이디어가 훨씬 강조돼 눈이 아닌 머리를 건드리는 예술”이라며 “단색화도 작가의 생각이 포함되지만 캔버스 표면에 남는 마티에르와 물성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197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197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출발점은 1970년대다. 작가들은 자신의 신체 행위에 언어적 논리성을 부여하며 일상의 행위를 하나의 사건으로 전환했다. 이건용의 대표작 ‘장소의 논리’가 보여주듯, 하얀 분필로 바닥에 원을 그린 뒤 그 안팎을 오가며 “여기, 저기, 거기”를 외치는 행위는 장소와 신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윤진섭의 ‘어법’은 ‘야, 애, 여’ 같은 음절을 발음하는 입 모양 사진과 그 소리를 쓴 글을 나란히 배치한다. 추상적인 언어 규칙이 인간의 구체적인 신체 행위와 부딪히는 순간을 시각화했다.

김범의 ‘풍경 #1’(1995) <국립현대미술관>

김범의 ‘풍경 #1’(1995) <국립현대미술관>

이후 개념미술은 언어가 사물과 세계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김범의 ‘풍경 #1’은 푸른 하늘이나 나무 대신 “이 푸른 하늘을 보시오” 같은 지시문만 적혀 있다. 눈앞에 물질적인 그림이 없어도 관람자가 텍스트를 읽는 순간 스스로 풍경을 상상하고 경험하게 만드는 개념미술의 본질을 보여준다.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2003) <국립현대미술관>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2003) <국립현대미술관>

나아가 작가들은 지도나 시계처럼 세계를 통제하는 표준 체계의 객관성을 뒤흔든다. 어설프게 그린 세계지도 앞에 ‘팍팍’ ‘세짐브라’ 등 실제 존재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작은 도시의 이름을 적은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이나 세계지도를 300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뒤, 이를 임의로 다시 배치한 성능경의 ‘세계전도’는 사람들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기준들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불안정한지 폭로한다.

오인환의 ‘퍼스널 애드’(1996) <국립현대미술관>

오인환의 ‘퍼스널 애드’(1996)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끝에 이르면 개념미술은 미술관을 넘어 사회적 소통의 영역으로 진화한다. 오인환의 ‘퍼스널 애드’는 미국의 한 주간지 광고 지면을 통해 작가가 스스로 커밍아웃한 작업이다. 신문 광고의 유통과 대중의 응답을 기다리는 열린 구조 그 자체를 미술의 형식으로 삼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28명 작가의 140여 점은 관람객이 글을 읽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질문에 반응할 때 비로소 완결된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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