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유령은 안 보인다 하고, 안 보이는 유령은 보인다 하는 연극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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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제공

무대에 ‘투명 인간’이 있다. 관객이 볼 수 없지만, 분명 그곳에 있는 존재다. 빈 병상 위에 그가 누워 있다는 설명이 흐르고, 사람 보이지 않는 전동 침대가 그의 조종에 따르듯 오르내린다. 관객은 보이지 않는 그의 걸음걸이를 머릿속으로 따라간다.

정세영 연출이 이 작품 ‘당신이 날 볼 수 없다는 것만 빼면’으로 다음달 독일 최대 규모의 공연 예술축제인 켐니츠 연극제에 오른다. 국립극단의 창작 연구개발 사업 ‘창작트랙 180°’의 첫 작품이다. 정 연출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관객의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상상을 통해 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개발 프로젝트 이름은 ‘소실점의 후퇴’다. 소실점은 회화에서 나온 개념으로 평행하는 직선을 투시도상에서 멀리 연장했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이다.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원근법 장치로 설명된다. 정 연출은 “극장도 소실점을 기반으로 무대를 더 깊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의 관심은 소실점의 기술적 개념에 머물지 않았다. 소실점 안에서 반대로 ‘누가 보는가’의 문제를 발견했다. 극장에는 소실점을 전제로 한 ‘왕의 자리’가 있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다. 정 연출은 “권력이나 힘의 비유로도 사용되는 개념인데, 이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에 정 연출은 관객들의 시선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투명 인간’이 등장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정 연출은 “시각의 활용을 최대한 없애버리고, 나머지 것들로 감각을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는 볼 수 없지만, 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장치들로 공연은 채워진다. 사람은 없지만 사람의 관절 구조를 따라 움직이는 전동침대가 하나의 예다.

관객들의 소실점은 끊임없이 교란된다. 시각적으로는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관객들은 병상에 누워 있던 투명 인간이 옆의 환자에게 걸어간다고 느끼게 된다. 상상 속에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투명 인간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교란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핑클의 노래가 실제로는 재생되지 않지만, 관객은 ‘각인 효과’로 자막만 보고 자동으로 멜로디를 떠올린다.

정세영 연출가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경덕 기자

정세영 연출가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경덕 기자

정 연출은 이를 ‘유령 감각’과 연결해 설명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실제로는 없는 손가락 끝의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실체가 없어도 인식의 차원에선 존재하는 감각이다. 그는 “인식의 차원이 시각보다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대에는 실제 유령도 등장한다. 유령은 흰 천을 뒤집어써 관객에게 보이지만, 없는 존재처럼 취급된다. 반대로 투명 인간은 무대 위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인식의 혼란을 극대화한 장면이다.

정 연출은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인 인식을 교란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세계 관객에게 공감대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 공연에선 핑클의 노래 대신 독일의 대중가요를 사용할 예정이다. 서독 밴드 네나의 ‘99개의 풍선’(99 Luftballons)이 주요 후보다. 독일어 가사는 경계를 넘어 날아오는 풍선을 미확인비행물체(UFO)로 오인한 군이 공격하고, 이를 확인한 다른 국가가 대응 포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연출은 “실제와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정 연출은 자신을 특정 장르에 가두지 않고 있다. 그는 한국의 대학에서 연극을, 프랑스에선 무대미술과 무용을 공부했다. 무용 대표작으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 정 연출은 이 작품으로 2016년 안무대회 ‘댄스 엘라지’에서 우승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기기를 활용한 프로젝트도 선보였다. 그는 “여러 장르에서 외부인으로 취급받는 일이 오히려 작업할 때는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관심은 극장 밖으로 넓어지고 있다. 공연 자체보다 관객이 그곳에 오게 되는 조건과 과정까지 포함하는 작업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공연은 관객이 객석에 앉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 왔는데, 사실은 공연장에 오는 과정을 빼먹고 있었던 것 같다”며 “극장 밖에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고 보면 거리와 심리의 문제까지 다룰 수 있고, 극장의 범위도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오는 7월 2~3일(현지시간) 독일 켐니츠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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