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 탄생 150주년인 올해 안 퐁텐 감독은 라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사진)을 내놨다.
“나는 머릿속 음악만 믿는다. 당신에겐 키스 대신 음악을 주고 싶다.” 세상 만물이 음악으로 들렸고 연심을 품은 상대에게조차 음악을 선물하고 싶어 한 라벨. 영화는 그의 대표곡 볼레로 탄생에 일조한 여러 명의 뮤즈를 조명한다. 콩쿠르에 수차례 떨어진 그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준 어머니, 라벨의 음악에서 섹슈얼리티를 발견하고 곡을 의뢰한 발레리나 이다 루빈시테인, 당대 프랑스 파리의 모든 예술계가 흠모한 여인 미시아 세르, 스페인 구전가요에서 볼레로의 힌트를 얻게끔 도와준 가정부 르블로 부인 등과의 일화가 흥미롭다.
볼레로의 규칙적인 리듬은 그의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의 기계 소리에 영향을 받았다. 음악을 거의 완성한 극 중 라벨은 음악을 의뢰한 루빈시테인을 공장으로 불러 “(볼레로로 무대에 올려질) 발레의 정신은 현대에 바치는 찬가이자 기계 세계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리허설 때 루빈시테인의 무대를 확인한 라벨은 불같이 화를 낸다. 둥그런 무대 중앙에 선 루빈시테인과 원을 둘러싼 남성들이 볼레로에 맞춰 에로틱한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
루빈시테인의 고집을 꺾지 못한 라벨은 그대로 볼레로의 파리 초연 무대를 보러 간다. 모두가 환호했고 항상 라벨을 드뷔시와 비교해 평가절하하던 평론가조차 “예전에 짜증 났던 당신의 기교주의가 에로틱한 차원으로 발휘됐다”고 호평했다. 영화는 역설적으로 완벽주의 천재인 라벨이 최고작으로 여기지 않은 결과물이 그를 다시 사랑받게 한 걸작이 된 사실을 보여준다.
볼레로가 사랑받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라벨의 노년이 스크린에 그려진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던 그가 볼레로를 들으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음악”이라며 생각에 잠긴다. 이승의 삶을 끝마친 라벨은 엔딩 신에서 천국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볼레로를 연주한다. 라벨은 동그란 대형의 오케스트라 정중앙에 서서 지휘봉을 흔든다. 볼레로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면서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 출신 프랑수아 알루가 홀로 춤을 춘다. 루빈시테인과 모리스 베자르의 관능적인 볼레로와는 달리 역동적이면서 자유로운 춤사위다. 항상 새롭게 해석되는 볼레로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퐁텐 감독은 전작 ‘코코 샤넬’(2009)을 통해 저명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며 이들의 보편적 고민과 심리를 잘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용수 출신인 그가 베자르가 안무한 발레 ‘볼레로’(1961)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까지 제작한 건 의외의 결심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