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너무 좋은데 저만 이상한가요” … 평화의 상징이 만든 역사

3 weeks ago 27

물도, 먹거리도, 희망도, 사랑도 사라진 절망의 나날. 40일 밤낮으로 퍼붓는 비 때문이었다. 거친 비에 생각도 함께 젖어버렸다. 모든 게 끝났다는 실의가 잠식했다. 때마침 ‘신의 사도’가 나타났다. 올리브 나뭇가지를 문 ‘비둘기’였다. 육지가 눈앞에 있음을 알리는 신의 목소리였다. 희미해진 희망이 윤곽을 드러내자, 사랑도, 물도, 먹거리도 다시 생겨났다.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노아의 방주 얘기에 기독교도는 감개 깊어서, ‘비둘기’를 찬양하는 단어를 곳곳에 새겨넣었다. 인간의 이름에, 양지바른 땅 이름에 비둘기를 의미하는 ‘콜롬보’가 붙은 배경이었다. 오늘날처럼 비둘기를 논하기 좋은 때는 없을 것이다. 세상 모두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인하하는 ‘비둘기파’가 나타나길 간절히 원할 테니까.

“기상청도 비온다고 안했는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힉스의 ‘노아의 방주’. 1846년 작품.

“기상청도 비온다고 안했는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힉스의 ‘노아의 방주’. 1846년 작품.

<플러스 포인트>
▶성경은 비둘기를 귀하게 여겨서, 기독교인들은 비둘기를 찬양하는 예술 작품을 여럿 남겼다.
▶기독교도 이름에 비둘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콜롬바’가 많은 이유였는데, 미 대륙에 발을 디딘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그 예였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으므로, 연준에도 낮은 금리로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인물을 비둘기파라고 부른다.

회색비둘기, 콜롬바의 등장

고대 로마에서는 비둘기를 ‘콜롬바’(Columba)라고 불렀다. 여기서 Col은 회색을 의미했다. 콜롬바는 그저 어두운 빛의 새, 비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약성경에서 ‘비둘기’는 신의 사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구약뿐만 아니었다. 신약 곳곳에도 비둘기는 정결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줄 때 성령은 비둘기가 되어 내려왔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 복음 10장 16절)고 조언했다. 비둘기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었다.

“이 귀여운 것들이 어쩌다가 한국에서 천덕꾸러기가...”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비둘기를 키운 인물로 유명하다. 그림은 19세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

“이 귀여운 것들이 어쩌다가 한국에서 천덕꾸러기가...”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비둘기를 키운 인물로 유명하다. 그림은 19세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

신의 품에 안기고자 하는 이들은 비둘기와 같아야 했으므로, 이름에 ‘콜롬바’를 새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비둘기처럼 정결하고, 순수하며, 무해해야 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콜럼버’들은 그야말로 비둘기 그 자체였다. 궁휼하고, 가여운 인간들에게 신의 말을 전하는 ‘콜롬바’들이 수 없어서였다. 563년 스코틀랜드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한 신부 성 콜롬바가 그랬고, 스페인의 성녀 콜롬버는 무슬림 통치 기간에도 배교하지 않고 853년 목숨을 버렸다. 순결한 콜롬버들이 겹겹이 쌓여, 비둘기는 신의 은총으로 반짝였다. 유럽 전역이 ‘콜롬버’를 제 이름에 새기려는 신자들로 들썩였다.

스코틀랜드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한 성 콜롬버. 19세기 영국 화가 로버트 허드먼의 그림.

스코틀랜드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한 성 콜롬버. 19세기 영국 화가 로버트 허드먼의 그림.

역사를 바꾼 콜럼버스

신의 비둘기는 멀리 날아, 새로운 신의 땅을 찾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발을 디딘 것이었다(1492년). 유럽인들은 남이 살던 땅에 제 이름을 붙이는 데 재미를 붙인 인물들이었으므로, 미 대륙 곳곳에는 ‘콜롬비아’라는 팻말이 따랐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엿해지고, 식민모국 영국에 고개를 빳빳이 들 때쯤, 콜롬비아라는 이름도 더욱 빛나고 있었다. 압제 영국에 저항하는 미국을 ‘콜럼비아’라는 이름의 여신으로 의인화했던 것이었다. “천상의 합창단이여! 빛의 영역에 앉아, 나는 컬럼비아의 영광스러운 투쟁의 장면들을 기록하노라. 자유의 대의가 그녀의 불안한 가슴을 울릴 때, 그녀는 찬란한 무구 속에서 두렵게 번쩍이네.”(미국 시인 필리스 위틀리)

나 신의 비둘기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노라. ‘콜럼버스의 상륙’. 1847년 미국 화가 존 밸더린의 그림.

나 신의 비둘기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노라. ‘콜럼버스의 상륙’. 1847년 미국 화가 존 밸더린의 그림.

콜럼비아는 이제 더 이상 평화의 비둘기가 아니었다.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었다. 미국이 독립한 직후인 1784년 5월 영국 왕을 상징하는 대학교 ‘킹스컬리지’를 ‘컬럼비아 대학교’로 개명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오염된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이야 말로, 독립의 첫발일 테니까.

‘컬럼비아’라는 자유의 이름은 뉴욕 외곽의 주 이름으로 번졌다가, 이내 스페인과 독립 전쟁을 벌이는 남미로까지 퍼져나갔다. 남미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는 남미 대륙이 스페인으로 벗어나 독립 공화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그란 콜럼비아’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미 대륙 전역에 ‘콜롬비아’가 퍼져 나갔다.

“나 콜롬비아, 미국의 여신이지.” 미국 화가 존 개스트의 그림 ‘미국의 진보’.

“나 콜롬비아, 미국의 여신이지.” 미국 화가 존 개스트의 그림 ‘미국의 진보’.

자유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는 정치라는 새로운 대륙에까지 둥지를 틀었다. 정치적 온건파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비둘기파’(Doves)라는 이름이 붙어서였다. 반대로 강경파에게는 ‘매파’(Hawks)가 붙었다. 특히 이웃 나라인 쿠바가 1962년 소련 핵을 들이려고 했을 때, 미국은 분열했다.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비둘기파와 무력으로 미국의 힘을 증명해야 한다는 매파가 부딪쳐서였다. 당시 대통령 케네디는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줬다. 쿠바 핵 위기는 그렇게 넘어갔다.

경제에도 나타난 비둘기

경제 분야에서 비둘기파와 매파라는 용어가 안착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웠다.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서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미국 연준 위원들은 정치적 ‘매파’만큼이나 위압적으로 보여서였다. 경제성장과 실업률을 위해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위원은 투자자들의 눈에 신만큼이나 자애로워 보였을 것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 내려가고, 그만큼 주식 투자할 여건이 좋아지니까.

“베트남 탈출은 지능순이지...” 철군하는 미군.

“베트남 탈출은 지능순이지...” 철군하는 미군.

세계 경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 연준은 괴롭기 그지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둘기’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저 자신은 전쟁을 불사하는 매파이면서, 경제에는 ‘비둘기’를 요구하는 이중잣대.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었다.

린든 B. 존슨은 베트남 전쟁을 크게 벌이면서, 동시에 복지 기금 조달을 위해 연준에 저금리를 압박했다. 후임 리처드 닉슨 역시 1972년 재선을 압두고 아서 번즈 연준 의장에게 통화 공급을 늘리라고 윽박질렀다. 연준은 결국 금리를 내렸다. 미국은 1970년대 파국적인 대인플레이션을 맞았다.

비둘기는 신이 보냈을 때만,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는 걸 어리석은 인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연준에서의 나의 목표는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라는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의 일성이 지켜지기를 바랄 수밖에.

캐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의장이 워싱턴D.C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캐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의장이 워싱턴D.C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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