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통해 볼 수 있는 어둠”…시인 서윤후의 달라진 시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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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자이기도 서윤후 시인은 금요일 퇴근 뒤 주말 내내 시를 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와서 책상 앞에 앉으면 마치 핀볼의 구슬이 구멍에 들어가듯 ‘내가 돌아왔구나’ 싶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자신의 시 ‘조용히 분노하기’를 직접 손글씨로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출판사 편집자이기도 서윤후 시인은 금요일 퇴근 뒤 주말 내내 시를 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와서 책상 앞에 앉으면 마치 핀볼의 구슬이 구멍에 들어가듯 ‘내가 돌아왔구나’ 싶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자신의 시 ‘조용히 분노하기’를 직접 손글씨로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대학 동기 결혼식에 갔을 때 일이다. 누군가 뷔페식당에서 서윤후 시인(35)의 등을 탁 쳤다. 졸업하고 처음 보는 동창이었다. 안부도 없이 “야, 너 아직도 시 쓴다며?”라고 대뜸 물었다. ‘아직도?’ 맘에 걸렸지만 웃으며 답을 했다.

“응, 나 ‘여전히’ 시 쓰고 있지.”

서 시인은 만 19세에 등단해 17년째 쉬지 않고 시를 쓰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를 병행하면서 지금까지 시집 5권과 산문집 4권을 펴냈다. ‘여전히’ 쓰는 정도가 아니라 지독하게 성실히 써 왔다. 최근 다섯 번째 시집 ‘나쁘게 눈부시기’(문학과지성사)를 펴낸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문지 사옥에서 만났다.

‘나쁘게 눈부시기’는 대체 어떻게 눈부신 걸까. 서 시인은 “전조등이 갑자기 환하게 비출 때, 저 사람은 밝게 나아가고 싶어서 켠 불이지만 누군가는 갑자기 사방이 안 보여 찡그리게 된다”며 “빛을 통해 볼 수 있는 어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엮었다”고 했다.

“그동안 ‘나쁘다’는 제 수첩엔 없는 단어였어요.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때부터 줄곧 자기 질서를 지켜온 표본적인 사람처럼 시를 써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작가가 ‘윤후 시인이 나쁘게 쓰는 글을 보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나에게 없던, 혹은 내가 숨겨왔던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말로 들렸어요.”

‘나쁘게’ 변신을 예고한 대로 이번 시집에는 유독 날카로운 조각의 이미지가 많다. 수록 시 ‘유리가미’에서 시적 화자는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연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매단다.

‘사람들을 뒤뜰에 남겨두려고 / 깨진 것 중 가장 날카로운 유리가미를 고른다 / 끊어진 연을 주우러 또 올 수 있게’ (시 ‘유리가미’에서)

킨츠기 방식으로 수리한 도자기. 일본 우정 정원 박물관(JFGM) 홈페이지

킨츠기 방식으로 수리한 도자기. 일본 우정 정원 박물관(JFGM) 홈페이지
하지만 이런 조각이 남을 상하게 하는 무기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시인은 깨진 조각을 이어 붙여 새 생명을 불어넣는 ‘킨츠기(金継ぎ·일본의 도자기 수리 기법)’를 들여다본다. 금가루로 틈을 메워 수선된 도자기는 깨졌던 부분이 아름다운 금색 선으로 빛난다. 상처를 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떻게 상처를 극복했는지 남겨놓는 셈이다.

‘접시를 깨뜨렸던 실수는 흉터의 좋은 재료가 된다…깨진 것을 이어 붙이며 무늬를 새겨 넣은 저 접시를 시작하는 접시라고 불러야 할까?’(시 ‘킨츠기 교실’에서)

날카로운 조각을 무기로 쓰던 시적 화자는 상처를 매만질 줄 아는 이로 성장한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서 시인은 “그동안은 붙잡고 끌어안고 싶은 마음에 집착하듯 기록한 것 같다. 헤어진 사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시에 많았다”며 “이제 지나칠 것은 지나치게 두고 남길 것은 남기면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서윤후 시인의 책상. 본인 제공

서윤후 시인의 책상. 본인 제공
그는 최근 매일 아침 쓰던 일기를 2주째 멈췄다. 기록 매체를 내려놓고 맨몸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법은 오히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그 시간에 투신하는 것”이라는 게 요즘 서 시인의 생각이다.

“기록을 못하니까 더 절실하게 보고 절실하게 들어요. 이런 방식으로 감각하는 게 좋습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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