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을 수 있다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2월 말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1분기 성장 전망치를 석 달 만에 0.5%에서 0.2%로 낮췄는데, 두 달도 안 돼 다시 역성장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다. 올해 연간 성장률도 2월에 예측한 1.5%를 크게 밑돌 수 있다고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고 했다.
한은은 2월에 제시한 성장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실토했다. 탄핵 선고 일정이 지연되면서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됐고,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불안감으로 경제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여기에 역대 최대의 산불 피해가 발생하고 고성능 반도체의 수요가 뒤로 밀리는 등 예상치 못한 악재가 겹쳤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2분기부터는 미국발 관세 폭탄의 후폭풍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벌써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6% 넘게 급감했다. 지난달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가 시작된 후 3주 사이에 수출 충격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상호관세, 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까지 더해지면 수출 피해는 걷잡을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상품무역이 최악의 경우 1.5%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환율과 부동산 등에 발목이 잡힌 한은은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통화정책이 제약받고 있는 상황에선 재정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정부가 18일 국무회의를 열고 12조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는데,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시켜 신속하게 집행을 시작해야 한다. 추경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성장률은 제한적이지만, 우선은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경제 현장에 단비가 될 것이다.대선만 바라보고 있는 정치권도 현재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의 상황에 몰렸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국민소득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는데, 구호로 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전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캄캄한 터널 속에서 역주행하는 격이 될 포퓰리즘의 유혹부터 과감히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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