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다.' 이것은 측우기의 기술적 사상이 최초로 기록된 세종실록 92권(세종 23년)의 일부 내용이다.
측우기(測雨器)는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한 우량계의 일종으로, 1441년 4월 29일(양력 5월 19일) 세종의 명에 따라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고안하고 장영실 등이 제작한 발명품이다. 당시 만들어진 측우기는 서양보다 약 200년 앞서 발명된 세계 최초의 과학적 강우 측정기다. 조선의 측우기는 땅에 스며든 물의 깊이를 측정하던 이전의 비합리적 강우 측정방식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강수량을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케 한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세계 과학사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5월 19일 발명의 날은 1957년 제19차 국무회의를 거쳐 측우기를 발명한 날을 기념해 법정기념일로 지정했고, 1957년 제1회 기념식을 시작으로 올해로 제60회를 맞이한다. 이날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발명 유공자, 원천기술 및 핵심기술 등을 개발해 위대한 발명업적을 이룬 이들을 중점 발굴하고 포상할 예정이다. 더불어 측우기, 앙부일구, 거북선, 온돌, 자격루, 금속활자 인쇄술 등 우수 발명품에 대한 명예특허증을 발급하고 전시해 선조 발명가들을 기리고 업적을 기념할 예정이다. 발명의 가치 확산 및 특허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부의 지식재산 정책비전 제시를 위한 다양한 발명 콘퍼런스 또한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기도 하다. 이에 조선 문호개방(1876년)부터 광복(1945년)까지 주요국 재외 한국인 발명에 대한 조사를 작년부터 실시해 독립유공 포상 2인(권도인, 강영승 선생) 포함 미국 특허 등록인 7인을 파악했고, 독립유공 발명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60회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관련 발명품을 전시하고 후손을 초청해 공로상도 함께 수여할 예정이다.
숫자 60은 '한 주기' '하나의 큰 순환' '완전함'을 의미하는 시간 개념으로, 나이와의 의미를 부여하면 '한 갑자가 한 바퀴 돌았다'라는 뜻의 환갑이 되기도 한다. 제60회 발명의 날을 맞이해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는 '지난 60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뒷받침한 대한민국 발명과 기술 혁신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순환과 완전함을 맞이할 다음 60년을 준비하겠다'라는 다짐으로 기념식을 치러낼 예정이다.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는 발명인의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이 이뤄낸 위대한 기록이자 산물이다. 앞서 언급했듯 서양보다 200년 앞선 발명품들을 만들어 내던 선조의 뛰어난 발명DNA를 물려받은 우리나라 발명인 덕분에 전쟁 이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은 남의 기술을 모방(COPY)하던 국가에서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국가로 바뀌었다. 또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던 수원국에서 탈피하고 다른 수원국에 원조하는 공여국이 됐다. 이처럼 오늘날 수출 세계 6위, 국제특허출원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는 발명이 그 시작이고 마중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명은 대한민국이 기술주권 국가, 경제패권 국가가 되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번 제60회 발명의 날 기념식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새로운 60년이 채 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발명인의 아이디어로 보이지 않는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바퀴 없는 자동차를 타면서 가족과 함께 여행 다니는 그날을 꿈꿔본다. 발명 60년, 오늘을 만들다 내일을 꿈꾸다.
황철주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cj_hwang@jse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