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 이후 파장이 커지자 일선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당초 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신뢰 훼손 문제를 다루자는 제안으로 시작됐다가 민주당의 사법부 독립 침해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전국 법원 판사 126명으로 구성된 이 회의가 열리려면 5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최근 법원 게시판에서 대법원 결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긴 했지만 법관대표회의까지 소집된 것은 이들 사안을 무겁게 보는 판사들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법부의 선거 개입”이란 비판의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도 있는 판결을 하려면 절차적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조금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소부 심리도 사실상 건너뛰고 전원합의체에서 두 차례 심리만 한 뒤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고법도 속전속결로 재판부를 배당하고 공판일을 정했다. 신속 재판으로 유권자들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이처럼 이례적인 진행은 정치적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최근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 행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서울고법이 이 후보 측 신청을 받아들여 재판을 대선 후로 연기한 뒤에도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공개 요구하고 청문회 방침도 밝히고 있다. 일단 보류했지만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탄핵, 특검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법부의 정치 개입이라고 비판하던 민주당이 사법부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삼권분립을 흔드는 입법권력 남용이란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26일 열리는 법관대표회의에서는 법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자정 목소리와 정치권의 사법부 흔들기를 규탄하는 의견이 두루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부는 ‘사법 과잉’을 우려하는 일선 판사들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민주당 역시 무절제한 권한 행사를 멈춰야 한다. 이번 법관대표회의가 사법부의 중립과 독립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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