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레오 14세는 아버지 쪽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혈통이고 어머니는 스페인계다. 27세부터 로마에서 유학했고,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로는 페루로 건너가 20년간 사목하며 페루 시민권도 얻었다.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와 라틴어가 유창한데 교황에 선출된 후 첫 강복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하고 라틴어로 마무리했다. 미국과 유럽 언론은 “가톨릭 글로벌리스트”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 교황”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청교도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여서 반(反)가톨릭 정서가 있었다. 역대 대통령 중 가톨릭교도는 존 F 케네디와 조 바이든 2명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부연합군 출신 가톨릭 교인들에게 암살당하자 1867년 건국 이후 유지해온 바티칸시국과의 영사 관계도 끊었다. 이후 117년 만인 1984년에야 공식 수교했는데 당시 교황이던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는 반공주의자로서 미국의 든든한 우군으로 냉전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1979년 백악관에 초청받은 첫 교황이었다.
▷미국 출신 교황 선출에 대해선 “도널드 트럼프 시대 대미 소통 강화 차원” “트럼프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백인 기독교인 집단인 복음주의자들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신학적으로는 중도 성향이지만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이민자 보호나 기후 위기 같은 진보적 의제에 관심이 많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도 있다.▷전임자들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간 68개국을 돌면서도 고국인 아르헨티나는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교황의 방문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특히 대선 전 “망할 공산주의자”라며 교황을 욕했던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과는 껄끄러웠다. ‘교황 합성사진’ 논란을 일으켰던 트럼프 대통령은 “레오 14세를 만나길 고대한다. 매우 의미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 교황이 언제 고국을 찾을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미국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주목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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