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대한산업보건협회장 인터뷰
국가 차원의 제도·인프라 강화 필요
“산업 환경 급변…예방 중요성 커져”
‘비전 2030’ 수립해 DX 플랫폼 구상
“이제 산업보건은 ‘사후 처리 산업’이 아닙니다.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투자’입니다.”
관료·재정통 출신인 이승철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이 취임 4개월 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의사 중심 조직’이었던 협회에 다소 이질적인 인물인 그는 오히려 이 부분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전문가는 이미 충분하니 이제는 기획·조직·데이터로 판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1일 충북 청주 협회 본부에서 만난 이 협회장은 ‘산업안전’ 중심 정책 기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산업보건’을 전면에 세우겠다는 구상을 강조했다. 고령화 등으로 노동시장 재편이 가속되고 있는 만큼 산업보건이 더욱 필수 요소라 투자는 물론 국가 차원의 제도와 인프라 강화가 필요하다는 진단과 함께다.
특히 산업보건 분야의 가장 큰 문제로는 ‘속도’를 꼽았다. 산업안전 분야에 비해 대응이 늦고, 여전히 사후 관리 중심이라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 차관보와 한국자금중개 사장 등을 역임하며 재정과 공공기관 정책 전반에서 경험을 쌓아온 이 협회장이 꺼낸 해법은 ‘데이터’다. 전국 19개 지부를 통해 건강검진, 작업환경 측정, 보건관리 데이터를 축적한 협회라는 강점을 살려 ‘산업보건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단순 시스템 구축이 아닌 민간 기업까지 참여하는 ‘개방형 생태계’로 만들어 건강검진·환경측정·보건관리 데이터를 통합해 기업에는 솔루션을, 정부에는 정책 근거를 제공하는 구조다. 이런 시스템이면 소규모 사업장도 접근이 쉬워져 현재 사각지대에 있는 50인 미만 기업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구상하고 있다.
다음은 이 협회장과의 일문일답.
Q. 내년이 80주년이라고 들었다.
A. 1947년 설립돼 국내 산업보건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전국 19개 지역본부 및 센터의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기관이다.
건강검진을 비롯해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대행, 교육사업, 혈액사업 등 산업보건의 핵심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4만8000개 사업장, 100만 명의 근로자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단순한 민간 서비스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닌,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며 산업보건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보건 혁신을 이끄는 플랫폼 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Q. 올해 1월 취임하셨는데.
A. 기재부에서 재정과 공공기관 정책을 담당하면서 항상 ‘국가 경쟁력의 본질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그 해답은 ‘사람, 그리고 건강한 노동’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산업보건 분야는 DX(디지털 전환)이 상대적으로 더디고, 구조적인 비효율이 존재해 중요성도 다소 저평가돼 있는 경향이 있다.
산업안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지금, 산업보건을 국가 핵심산업의 반열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판단했다.
Q. 현장에 와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점은.
A. 가장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는 산업보건이 국가 산업의 핵심 인프라임에도 여전히 ‘사후관리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20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많은 근로자들운 여전히 직업병이나 만성질환에 노출돼 있다. 서서히 진행되는 질병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책적·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가 있음에도 그 활용이 극히 제한적이다. 매년 수천만 건에 달하는 검진 및 작업환경측정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단편적으로 활용될 뿐 국가 차원의 통합 분석이나 AI(인공지능) 기반 위험 예측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Q.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A. 특정 산업군에서 어떤 유해요인이 장기적으로 어떤 질병으로 이어지는지, 혹은 특정 사업장에서 어떤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예측 모델’이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산업보건은 본질적으로 ‘데이터 산업’임에도 여전히 과거의 경험과 규정에 의존하는 구조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 같다.
Q. 이 분야가 여전히 사업주 의뢰 기반 구조라는 지적도 있던데.
A. (아니다. 현장에 와서 보니) 사업주들의 인식이 요즘 많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산업보건은 ‘비용’으로 취급됐는데, 최근에는 ‘투자 개념’으로 인식을 많이 하더라.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 환경 측정은 연 2회다. 그런데 최근 현대건설은 저희에게 1년에 2번이 아닌 월 1회, 즉 연 12회를 하겠다고 요청했다.
이건 기업들이 규제가 아니라 투자로 보는 거다. 근로자 건강이 곧 기업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Q. 산업보건 환경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들었다.
A. 우선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진 근로자가 늘어나 ‘질병 관리’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두 번째는 ESG 경영 확산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기업 평가의 핵심 지표로 보고 있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신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마지막은 디지털 기술 발전이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산업보건은 단순 측정이나 사후 대응이 아니라 ‘예측과 예방’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
여기에 플랫폼 노동과 다양한 노동형태 확대까지 더해지면서 산업보건은 더 이상 ‘기업의 규제 대응’이 아니라 ‘기업 전략의 핵심’ 영역으로 이동 중이다.
Q. 산업보건이 산업안전보다 과소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A. 산업안전이 사고를 줄이는 일이라면, 산업보건은 근로자의 건강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사고는 일시적이지만, 건강 문제는 장기적이고 누적된다. 실제 직업성 질환, 근골격계 질환, 정신건강 문제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하며 기업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Q. 수치로 봐도 그런가.
A. 최근 산업재해 통계(고용노동부 2025년 산업재해 현황)를 보더라도 사고재해자는 감소했지만 질병재해자는 3만3825명으로 전년보다 25.3% 늘었고, 질병사망자도 1376명으로 사고사망자 872명보다 많았다.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 기준으로 보면 사고사망만인율은 0.38‱ 수준으로 낮아진 반면, 질병사망만인율은 0.60‱로 더 높게 나타났다. 결국 사고는 감소했지만, 보이지 않는 질병 위험은 오히려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앞으로 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안전한가’ 못지않게 ‘얼마나 건강한 인력을 유지하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만큼 산업보건 역시 산업안전 만큼 더 본질적인 영역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Q. 산업보건 정책의 방향성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지.
A. 우선 사후관리에서 ‘사전예측’으로의 전환이다. 개별 서비스에서 ‘통합 플랫폼’으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현재는 건강검진, 측정, 보건관리, 교육, 컨설팅 등 정보가 각각 분리됐는데, 이를 기업과 근로자 관점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경험 중심에서 ‘데이터·AI 중심’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Q. 협회 차원에서는 어떤 플랫폼 전환을 구상하고 있나.
A. ‘비전 2030’ 계획의 핵심은 ‘산업보건 플랫폼화’다. 단순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검진, 측정, 관리, 교육 등 모든 산업보건 생태계를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에는 맞춤형 솔루션을, 근로자에게는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를, 정부에는 데이터 기반의 정책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산업보건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건강한 노동자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국가 산업보건 플랫폼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협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A. 산업보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의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데이터를 통해 기업의 ‘건강경영’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할 시기가 됐다.
사업장별 건강 리스크를 분석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산업 전반의 건강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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