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 타선과 신바람 야구를 이끈 불멸의 4할타자 백인천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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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전 감독. /사진=뉴시스지난 15일 광복절에 세상을 떠난 백인천(향년 83세)은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큰 족적을 남긴 야구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에 대한 부고 기사가 쏟아진 이유다.한국 프로야구의 원년인 1982년에 타격왕에 올랐을 때 그의 타율은 4할1푼2리였다.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탄생한 기록 가운데 그의 타율 4할은 가장 깨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불린다.감독으로서 백인천은 1990년 LG 트윈스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서울 연고 팀으로는 최초의 우승을 달성한 LG 트윈스는 당시 화끈한 공격 야구로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당시 6월 초까지 꼴찌 팀이었지만 후반기 대반격에 성공해 우승을 거둔 LG 트윈스의 역전 신화에는 백인천 감독의 역할이 컸다. '프로 선수라는 의식을 항상 잊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야구 철학은 모래알 같던 LG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짜임새 있는 타선과 기동력의 LG는 1990년에 '신바람 야구'의 서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는 이후 삼성(1996~1997)과 롯데(2002~2003)에서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사라졌다.백인천의 야구인생은 2003년 롯데 감독 시절 성적 부진과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 때문에 경질된 뒤 내리막 길을 걸었다. 그는 국민타자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 일본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세 차례 뇌줄중으로 건강이 악화됐다. 설상가상 격으로 사기 피해까지 당해 경제적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지난 15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인천 전 감독의 빈소. /사진=뉴스1야구인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의 최전성기는 일본 프로야구에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경동고 재학시절부터 일본 야구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대형 타자였다.1960년 경동고는 한국 고교야구 팀으로는 최초로 일본 원정경기를 펼쳤다.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펼쳐진 니혼다이니(日大二) 고교와의 경기에서 4번타자로 출전했던 백인천은 3점 홈런을 터트렸다. 2차 대전 이후 고교생으로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홈런을 기록한 것은 그가 두 번째라 일본 언론에서는 백인천을 크게 주목했다.2년 뒤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니혼햄 파이터스의 전신)에 입단한 백인천은 재일동포 장훈과 함께 한솥밥을 먹었다. 1963년부터 도에이에서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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