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제 만드는 ‘IT원로’ 정태명 히포티앤씨 대표
정년퇴임 앞두고 창업 도전해
VR·AI 활용한 맞춤치료 선봬
정부 ‘미래 유니콘’ 선정되기도
우울증·공황장애 등도 도전장
“정신건강은 지역별 의료격차가 큰 대표적 분야입니다. 전문의 수를 예로 보면 서울 강남구에 224명이 있는 반면 경기도 양평이 2명, 전북 무주군은 아예 없죠. 창업으로 이 같은 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보람 넘치는 ‘인생 2막’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2023년 정년을 맞은 정태명 히포티앤씨 대표(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창업에 도전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전자정부 구축에 기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보보호분과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원로다. 히포티앤씨는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20년 교원 창업으로 시작했다.
정 대표는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도전한 까닭으로 “첨단기술을 통해 다양한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과 건강을 되찾게 돕고 싶었다”며 “‘히포티앤씨’라는 사명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테크놀로지로 구현해 사람을 케어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치료제(DTx)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질병에 대응하는 신개념 치료법이다. 기존 생물화학적 치료제와 달리 웨어러블 기기나 모바일 앱,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개인별 특징에 맞춰 치료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정신건강과 신경과 질환, 만성질환에 주로 쓰이고 있지만 점차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히포티앤씨의 주력 분야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다. VR와 AI를 사용해 진단과 치료 모두를 도모한다. VR 기기를 착용한 아이들이 자체 개발한 콘텐츠를 놀이처럼 즐기면 그 과정에서 진단이 이뤄지고 개인 데이터가 형성된다. 치료 과정 또한 게임을 기반으로 한다. 의학적 근거를 참고해 만든 미니 게임과 레이싱 게임을 통해 집중력 향상과 과잉행동 조절 등을 이끌어낸다.
정 대표는 “VR을 통한 진단은 서면 조사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거짓 응답’도 걸러내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실제 10곳이 넘는 초·중학교와 심리상담센터 약 40곳에서 사용한 결과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이고 있다. 매번 혼나던 학생이 3개월 동안 한 번도 지적받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히포티앤씨가 2022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2개 부문의 혁신상을 수상하고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미래 유니콘’으로 선정된 배경이다.
최근 몇 년간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우울증 치료에도 도전하고 있다. AI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의 우울 정도와 원인을 파악하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인지행동치료 기반의 비약물 치료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또 VR로 가상의 반려동물 ‘코기’를 만들어 심리적 접근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 결과 파일럿 테스트에서 우울감은 약 25%, 불안감은 약 15% 감소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회사가 개발하는 프로그램은 국내 유명 대학병원은 물론 미국 네브래스카대학병원 등 해외 전문기관에 소속된 정신건강의의 조언을 받아 만들어진다”며 “처방전을 발급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격 제품 외에도 환자들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보급형 제품도 개발 중”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정신질환 약품은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인데 디지털치료제는 그렇지 않다. 향후 공황장애와 자폐증 등에도 효과를 볼 제품을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