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바람 속 8시간반 만에 진화
165가구 대피… 이재민 180명 발생
2011년부터 20건 이상 화재 잦아
삶의 터전 잃은 주민들 “앞날 막막”
1992년부터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살아왔다는 80대 김모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울 강남 일대가 저층 주거지에서 초고층 빌딩 숲으로 바뀌는 동안 30년 넘게 살아온 김 씨의 판잣집은 하룻밤 새 잿더미가 됐다. 오랜 터전에서 겨우 챙겨 나온 짐은 작은 가방과 비닐 봉지 하나뿐이었다.
16일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경 개포동 구룡마을 6개 지구 가운데 4지구에서 불이 나 8시간 28분 만인 오후 1시 28분경 진화됐다. 강한 바람으로 거세진 화재로 165가구 258명이 대피했고 18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무허가 주거지로 한때 1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거주했다. 상당수 주민이 이미 떠났고 마지막까지 갈 곳을 찾지 못한 저소득층·고령층 주민들이 머물고 있다. 서울시는 2027년부터 공공주도 방식으로 구룡마을을 재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후화된 시설과 부족한 소방 인프라로 이곳에서는 2011년 이후 최근까지 20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했다. 유귀범 주민자치위원회장은 “38년 동안 열댓 차례 불이 났지만 이번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소방 당국은 오전 5시 10분 강남소방서 인력을 총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고 불길이 커지자 오전 8시 49분 대응 2단계로 격상했다. 화재 초기 안개와 미세먼지로 헬기 투입이 지연돼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경찰·구청 인력 1258명과 장비 106대가 동원됐다. 이날 화재 현장엔 주택 철골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녹아내린 보일러 배관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콘크리트 전봇대조차 철근이 드러난 채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있었다.
길게는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35년간 구룡마을에 거주해 왔다는 최모 씨(82)는 바짝 마른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얼마 전 빙판에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가 집 안에 누워 있었는데 겨우 빠져나왔다”며 “옷도 사진도 냉장고도 모두 탔다. 남은 게 없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이곳에 살았다는 정미숙(가명·62) 씨는 “하루 일당 12만 원 받는 식당 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몸과 옷가지만 겨우 챙겨 나왔다”며 “저축도 없어 앞이 막막하다”고 했다.
서울시는 구룡중학교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고 강남구 내 호텔 2곳에 임시 거처를 확보했다. 강남구는 구호물품을 확보하여 임시 대피소에 배치해 이재민들이 보다 안정적인 임시 거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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