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마다 논란 키운 '3無' 선관위 …"근본개혁 없이 신뢰회복 불가"

6 days ago 8
사회 > 사건 사고

선거마다 논란 키운 '3無' 선관위 …"근본개혁 없이 신뢰회복 불가"

입력 : 2026.06.04 18:03

개함 못한 채 놓인 투표함 2개 6·3 지방선거일 하루 뒤인 4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송파구 개표소에 개함이 안 된 잠실7동 제1투표소 투표함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개함 못한 채 놓인 투표함 2개 6·3 지방선거일 하루 뒤인 4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송파구 개표소에 개함이 안 된 잠실7동 제1투표소 투표함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선거 논란이 지난 3일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되풀이됐다. 이번에는 투표용지를 유권자 수보다 적게 준비하는 어이없는 사고를 저질렀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반복적으로 사고를 터뜨리는 배경에는 폐쇄적 인사 구조, 외부 견제 부재, 불명확한 책임 소재, 부실한 위기 대응 매뉴얼 등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어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는 4일 오후까지 시위대가 "부정선거" "선관위 해체"를 외치며 선관위 측과 대치를 이어갔다. 총 2000장의 투표용지가 담긴 투표함 2개가 공식 투표 마감 시간 이후 반나절이 지나도록 개표소로 이송되지 못했다. 김범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이 이날 오전 투표소를 방문해 "개표가 완료돼야 투표 결과가 확정될 수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위대의 반발은 그치지 않았다.

사진설명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선관위는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바구니, 이른바 '소쿠리'에 담아 투표함으로 옮기는 부실한 관리로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손에 든 채 투표소 밖으로 나가 점심 식사를 하고 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제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폐쇄적인 인사 구조가 꼽힌다. 선관위는 오랜 기간 내부 순환과 장기 근무 중심의 인사 구조를 유지해왔다. 같은 직원들이 자리만 바꿔가며 수십 년간 선관위에서 근무하다 보니 끼리끼리 챙기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감사원 감찰 등을 통해 드러난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도 이 같은 배경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당시 감사 과정에서 한 직원은 "과거 선관위가 경력직 채용을 할 때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취지로 답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인사담당자들은 선관위를 '가족회사'로 지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설명

외부 기관의 견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선관위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하라는 취지에서 헌법기관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찰을 받지 않고, 내부 감사 부서도 순환근무 직원들로 채운다.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이번 사태에도 선관위는 투표용지 준비 수량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용지가 부족할 수 있다는 보고가 언제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등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선거 관련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중앙·시도·구시군 선관위의 책임이 분산되면서 책임자를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위기 대응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파악했을 때 추가 인쇄와 배송이 신속히 이뤄졌는지, 투표시간 연장과 유권자 안내가 적절했는지, 투표함의 차질 없는 이송 준비가 돼 있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특히 유권자의 투표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선관위원장 등 주요 관계자들의 파면까지 검토해야 할 정도의 중대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어난 잠실7동 제2투표소는 공직선거법 제155조 1항을 근거로 투표시간을 오후 10시로 연장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는데, 유권자의 투표권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법률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 지방선거 개표가 종료되는 대로 외부 전문가 위주로 구성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복된 부실 관리와 폐쇄적 조직문화에 대한 근본적 개혁 없이 자체 조사만으로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선관위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무총장의 거취까지 고민해야 한다"며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져야 할 것이고,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국가 헌법기관이 초래한 중대한 선거관리 실패이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투표제도의 근본을 훼손한 폭거"라며 "노태악 위원장을 비롯한 부실 선거관리 책임자 전원은 즉각 사퇴하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충고한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의 독립성은 반드시 유지해야 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상임위원·비상임위원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그 과정을 공개해 시민들의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소정 기자 / 박자경 기자 / 전경운 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