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피하기 위해 세운 외국법인…실체 있어도 조세혜택 못 받는다

2 weeks ago 3

정재희 변호사

정재희 변호사

실체를 갖춘 외국법인이라도 배당소득을 상위 법인에 그대로 넘기는 구조라면 조세조약상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국적 기업들이 중간 지주회사를 활용해 낮은 세율의 조세조약을 적용받는 이른바 ‘조약쇼핑’에 제동을 건 판결로 평가된다.

대법원은 지난 3월 12일 다국적 기업 A그룹의 한국 자회사가 삼성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해 피고 승소 원심을 확정했다.

이지민 변호사

이지민 변호사

이 사건은 A그룹 한국 자회사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영국법인 ‘A유럽’에 약 2512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한·영 조세조약상 제한세율 5%를 적용해 세금을 원천징수한 데서 비롯됐다. 과세관청은 영국법인이 배당소득의 실질적 귀속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영 조세조약 적용을 배제하고 법인세법상 세율 20%를 적용해 약 427억원을 부과했다. 이후 배당소득의 수익적 소유자를 미국법인으로 재판단해 한·미 조세조약상 10% 세율로 일부 감액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기존 판례가 ‘페이퍼컴퍼니’에 한정해 온 도관 개념을 실체 있는 법인으로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영국법인 A유럽은 인적·물적 시설을 갖추고 실제 사업활동을 하는 법인이었지만, 법원은 배당금을 수령한 직후 동일한 금액을 상위 지주회사로 송금하는 구조였고 내부 문서에서도 조세회피 목적의 지배구조 개편이 확인됐다는 점을 근거로 도관에 불과하다고 봤다.

삼성세무서장을 대리한 법무법인 바른은 두 가지 핵심 논리로 승소를 이끌었다. 우선 인적·물적 실체 유무가 수익적 소유자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존 대법원 판례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대법원이 중간 회사의 실체 부재를 도관 인정의 ‘하나의 근거’로만 삼고 있을 뿐, 이를 절대적 요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나아가 “다국적 기업의 지배구조 특성상 모회사의 소득이전 지시가 명문 계약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종속기업이 지배기업의 사실상 영향력에 의해 의사결정 자율성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전 의무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구체적 사실관계와 함께 법원에 제시했다.

정재희 바른 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는 “이번 판결은 실체를 갖춘 법인도 배당소득의 흐름과 지배구조의 실질을 종합적으로 살펴 도관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으로, 다국적 기업의 조세조약 남용에 대한 과세 근거를 한층 강화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