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혁신적' 와인, 나파밸리에 韓 도전정신 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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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블렌딩 와인을 병입하던 날, 이런 ‘엉뚱한 와인’을 누가 사줄까 싶어 펑펑 울었죠. 하지만 ‘나파밸리 최초의 한국인 와인 메이커’로 살아남게 한 원동력은 그런 도전 정신이었습니다.”

미국 나파밸리의 유일한 한국인 와인 메이커, 세실 박 이노바투스(INNOVATUS) 대표의 말이다. 연세대 식품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20대의 나이에 미국으로 떠난 그는 지금 세계 톱 소믈리에들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오퍼스 원, 할란 에스테이트 등 내로라하는 와인 브랜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인물이 됐다. 원칙은 하나였다. ‘나파밸리의 문법을 따르지 말고 기존에 없던 와인을 만들자.’

최근 한국경제 웨이브와 만난 박 대표는 “한류 바람이 미국에서도 불면서 이제는 외국인과 동포들도 한국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먼저 찾고 있다”며 “국내에서 한국산 와인을 만들어 나파밸리로 역수출하는 게 다음 목표”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실 박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나파밸리 와인 메이커다. 그가 만드는 와인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아영FBC

세실 박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나파밸리 와인 메이커다. 그가 만드는 와인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아영FBC

▷공학도에서 와인 메이커가 된 계기는.

“원래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슈퍼마켓에서 산 와인을 접했는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 길로 와인 메이커를 꿈꾸며 바닥부터 일을 시작했다. 특히 나파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메이커 중 한 명인 하이디 배럿과 함께 일한 것이 귀중한 경험이 됐다. 여성의 섬세함이 색다른 와인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파밸리에서 한국인, 여성으로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민자이자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중심인 나파밸리에선 철저한 소수자였다. 살아남기 위해 장착한 무기는 학문적 깊이였다. 와인업계 엘리트 코스인 UC데이비스에서 정확한 전문 용어와 기술을 익히고, 포도밭(빈야드) 관리부터 철저하게 배웠다. 포도밭의 재료와 흙을 이해하고 나니 창의성이 샘솟기 시작했다.”

▷브랜드명인 ‘이노바투스(INNOVATUS)’에 담긴 철학이 있나.

세실 박이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와인 배럴을 살펴보고 있다.  ⓒ이노바투스

세실 박이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와인 배럴을 살펴보고 있다. ⓒ이노바투스

“이노바투스는 ‘이노베이션’(혁신)을 뜻하는 라틴어다. 미국이 와인의 종주국이 아님에도 ‘파리의 심판’과 같은 기적을 이뤄낸 것은 이민자들의 혁신적인 사고와 끊임없는 시도 덕분이었다. 이노바투스는 그 이민자 정신을 기리는 와인이자 계속 혁신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더라도 와인밭의 개성을 극대화한 싱글 빈야드 방식(하나의 밭에서 나는 포도로만 와인을 제조하는 것)과 독특한 블렌딩을 고집하는 이유다.”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많이 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오니에(Viognier) 스파클링 와인’이다. 나파밸리에서 비오니에는 전체 생산량의 2%도 안 되는 아주 희귀한 품종이다. 이 품종으로는 아무도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전통적인 샴페인 제조 공식을 따르되 품종 자체를 뒤트는 시도였다. 레드 와인인 ‘뀌베 레드 블렌드’ 역시 사람들이 절대 섞지 않는 피노 누아와 시라를 블렌딩했다. 2014년 첫 병입 날에는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결국 그 고집이 지금의 이노바투스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최근 세계적으로 한류가 거센데, 영향이 있나.

“미쉐린 스타 셰프들과의 한식 페어링 행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의 고추장, 된장, 쌈장 그리고 묵은지와 무청을 활용한 한식 페어링 디너를 열었는데, 현지인들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이노바투스 와인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도 집에서 늘 한식과 와인을 매칭한다. 육즙이 풍부한 갈비찜에는 묵직한 카베르네 소비뇽이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루고, 양념 불고기에는 뀌베 레드 블렌드가 잘 어울린다. 양념이 들어간 냉면에는 청량감과 타닌의 밸런스가 좋은 로제 와인을, 치킨에는 비오니에 스파클링을 곁들이는 시도도 추천한다.”

▷와인메이커로서 다음 목표가 궁금하다.

“한국에서 직접 밭을 일구고 한국산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테루아(자연조건)가 쉬운 조건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도전하려고 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친환경 농법을 나파밸리에 역으로 전수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칠레 몬테스, 와인업계 돈키호테가 꿈"
수석 와인 메이커 아우렐리오 몬테스 주니어

"세상에 없던 '혁신적' 와인, 나파밸리에 韓 도전정신 심었죠"

몬테스는 국내 단일 와인 브랜드 중 판매량 1위다. 지난해 7월 기준 국내 누적 판매량 1700만 병을 넘어섰다.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 2019년 칠레 대통령 방한 만찬에도 몬테스 와인(몬테스 알파 엠)이 테이블에 올랐을 정도로 외교 무대의 단골손님이다.

"세상에 없던 '혁신적' 와인, 나파밸리에 韓 도전정신 심었죠"

이 브랜드의 핵심 자산은 ‘일관성’이다. 자연과 싸워야 하는 와인업계에서 198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품질을 유지해온 칠레의 대표 와인이다. 아우렐리오 몬테스 주니어 비냐몬테스 와이너리 수석와인메이커(사진)가 창업자인 아버지 아우렐리오 몬테스 시니어의 뒤를 이어 몬테스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일관성의 비결은 끝없는 모험과 도전이었다. 최근 한국경제 웨이브와 만난 몬테스 주니어는 “축구에서도 누구나 한 골을 넣을 수는 있지만, 수십 년간 일관되게 잘해야 진정한 강팀”이라고 했다.

몬테스가 운영하는 아팔타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숙성을 위해 오크통 주변에 365일 내내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어놓는다.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던 몬테스 시니어가 풍수지리에 맞춰 와이너리를 설계했고, 성가의 깊은 진동이 아기를 재우는 평온한 자장가처럼 와인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접목했다.

"세상에 없던 '혁신적' 와인, 나파밸리에 韓 도전정신 심었죠"

칠레 파타고니아 극지방에 있는 메추케섬에 와이너리를 조성하는 등 새로운 실험도 이어가고 있다.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 보트로 1시간을 더 달린 뒤 또다시 20분을 걸어가야 겨우 닿는 혹독한 극지방이다. 2년 동안 연 최대 생산량은 고작 400병밖에 안 된다. 몬테스 주니어는 “남들에게 가끔‘미쳤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당장의 비용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와인업계 돈키호테’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시장에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몬테스 와인이 많이 팔리는 나라입니다. 카르미네르 등 아직 생소하지만 잠재력 있는 새로운 품종의 매력도 꾸준히 알려나갈 거예요.”

"美 로버트 몬다비, 유행보다 전통 고수"
수석 와인 메이커 커티스 오가사와라

"세상에 없던 '혁신적' 와인, 나파밸리에 韓 도전정신 심었죠"

“어제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 60년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전설적인 와이너리 ‘로버트 몬다비’의 커티스 오가사와라 수석 와인 메이커(사진)는 최근 한국경제 웨이브와 만나 “유행을 좇기보다 전통을 고수하며 와인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 프리미엄 와인의 대명사이자 국내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 중 하나로,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창립자인 고(故) 로버트 몬다비는 ‘나파밸리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명망이 높다.

오가사와라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레슬링 선수로 활약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일본계 미국인으로, 16년째 이 와이너리에 몸담고 있다.

그는 “운동선수는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로버트 몬다비 역시 와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는 데 집중한 덕에 긴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와인 라인업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오가사와라는 “사람들이 도수가 낮고 가벼운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유행을 좇기보다는 전통을 기반으로 변화를 주고자 한다”며 “최근 새롭게 만드는 와인은 대부분 와이너리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특별한 와인”이라고 했다.

애호가들에게 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와이너리도 최근 새로 단장해 문을 열었다. 그는 “자연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와이너리 건물 벽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로 설계했다”며 “방문객은 마치 포도밭 안에 들어와 포도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신선한 채소를 직접 재배하는 퀴지너리 가든을 조성하고,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위한 파인 다이닝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오가사와라는 “그동안 쌓은 유산을 바탕으로 매년 더 진화하는 와인 브랜드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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