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이 하청 방역업체 소속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제기된 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그동안 중후장대 제조업 현장에서 불거지던 불법파견 소송이 업종과 직무를 가리지 않고 늘어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2심 판결이 비슷한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심 법원 “방역업체 직원 직고용해야”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인천원외 민사2부(재판장 신종오 부장판사)는 셀트리온 하청업체 프리죤 직원 2명이 셀트리온을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 2심에서 전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프리죤 직원 2명은 각각 2009년, 2011년부터 셀트리온 공장에서 공장 무균실의 벽 바닥 천장을 청소하고 소독하는 ‘야간 클리닝’ 업무를 수행했다. 이들은 2019년 셀트리온이 직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셀트리온이 프리죤과 형식적으로는 도급 계약을 했지만 실제로는 근로자를 파견받은 구조라고 주장했다. 파견 근로자가 동일 사업장에서 2년을 넘겨 일하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2023년 1심 법원은 셀트리온이 표준작업지침서(SOP)를 통해 프리죤 업무를 실질적으로 지휘·명령했다고 보고 근로자 측 승소 판결했다. SOP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설정한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준수 항목 중 하나다. 법원은 “SOP에는 야간클리닝 용액 종류와 용도, 희석 비율과 살균 주기가 지정됐다”며 “직원들은 SOP에 구속돼 작업했다”고 판단했다.
◇달라진 2심, “업무상 지휘·명령 아냐”
2심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핵심 근거인 SOP에 대한 해석이 갈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SOP는 GMP를 준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야간클리닝팀도 GMP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며 “SOP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지휘·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FDA 기준에 따른 업무 범위일 뿐 업무 지시는 아니라는 뜻이다.
프리죤과 셀트리온이 서로 독립된 기업이라는 셀트리온 측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업종이 상이한 데다 인력 채용도 별개로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야간 클리닝 업무는 청정도 유지라는 서비스인 데 비해 셀트리온이 영위하는 사업은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생산”이라며 “프리죤은 취업규칙·인사규정에 따라 자체적으로 채용·해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약업은 제조 공정의 자동화·표준화 정도가 뚜렷해 불법파견 소송이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셀트리온 하청 근로자가 제기한 이번 소송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제약·바이오 업계 노동 분쟁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대형 로펌 노동 담당 변호사는 “주요 대형 바이오기업은 방역업체를 하청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2심에서 하청업체의 업무내용이 구체화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