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이 비약물 치료법으로 의료 현장에 적용됐다. 농촌진흥청은 조현병 환자와 우울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원예 기반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실증한 결과 주요 증상과 생체 지표가 모두 통계적으로 개선됐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실제 병원 내 의료수가로 청구돼 제도화 가능성도 확인됐다.
치유농업은 식물 재배, 수확, 활용 과정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돕는 심리지원 기법이다. 이번 실증은 전북 김제 신세계병원, 전북특별자치도 마음사랑병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7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참여자는 주 1회씩, 총 10~12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입회했다.
조현병 환자군은 기존 약물치료군 대비 음성증상이 10%, 일반정신병리증상이 23% 감소했고, 자율신경활성도는 13%, 심장안정도는 12% 향상됐다. 양성증상도 13% 줄어들며 신체적 이완과 스트레스 조절 능력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고위험군은 우울감이 30% 감소했고, 감정 안정과 내면 성찰 능력을 나타내는 뇌파 지표(RT, RA)는 각각 29%, 18% 증가했다. 특히 대인관계 요인은 48% 감소하며 뚜렷한 효과를 보였다. 우울 고위험군은 임상적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으로, 치유농업의 예방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프로그램은 조현병 대상에는 긍정심리모델을, 우울 고위험군에는 인지행동전략을 적용해 구성됐다. 식물의 생애주기를 삶에 비유하거나, 병해충 방제와 같은 활동을 통해 문제 해결과 자기 성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자가 관리와 정서 표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설계됐다.
실증 과정에서는 병원 내에서 의료수가가 청구됐다. 적용된 항목은 '작업 및 오락요법'과 '지지표현적 집단정신치료'로, 치유농업이 정신의료 현장에서 실제 치료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농진청은 치유농업을 공공서비스로 확장하기 위해 전국 정신건강 증진기관 9곳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국 4개 권역에서 실용화 사업을 병행한다.
전체 정신의료기관으로 확대할 경우, 2028년까지 연간 약 23만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농진청은 전망했다.
김명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장은 “치유농업의 치료적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데 의미가 있다”며 “약물 치료 보완 수단으로서 제도화·산업화 기반을 확립해 국민 정신건강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건학 전북 마음사랑병원 원장은 “병원 환경 내에서 의료진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해 접근성과 안전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