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장쑤성 치둥시에서 열린 ‘한·중 양국 무역문화융합산업회의’에 참석해 ‘반도체와 AI, 한·중 경제발전 방향’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치둥시가 단기적으로 인재와 인프라를 확충하고, 중기적으로 핵심 기술 역량을 강화하며, 장기적으로 첨단산업 협력을 선도하는 미래 도시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반도체 패권이 미래 도시 전략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행사뿐만 아니라 치둥시 곳곳에서 중국 차세대 리더들의 거대한 야망과 뜨거운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럼 기간 중 치둥시의 첨단산업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예상한 것 이상으로 현지 개발 속도가 빨랐다. 생명건강과기단지와 진후이과기단지 등 첨단 산업단지를 시찰하며 중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 추진과 기술 집중 전략이 만들어낸 성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 ‘양무운동’의 역사를 지닌 치둥시는 불과 몇 년 사이 반도체 장비·부품부터 소재와 완제품에 이르는 완결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정부 차원의 외국인 투자 촉진 플랫폼까지 치밀하게 만들어 놔 마치 ‘신(新) 양무운동’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이런 첨단산업 인프라는 중국의 정책 일관성과 기술 중심 발전 전략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중국의 질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06년 2020년까지의 과학기술 15개년 발전계획을 수립해 일찌감치 과학기술 혁신을 국가 발전의 중심에 놓았으며, 2022년에는 2035년까지 ‘과학기술 최강국’에 올려놓겠다고 거듭 공식 천명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연구개발(R&D) 투자를 폭발적으로 늘려 이제 총투자 규모에서 세계 2위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2025년 전체 예산이 600조원대인데, 중국은 R&D 예산만 800조원대라고 하니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투자 집중으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핵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한 국가적 노력도 각별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첨단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높지만 인재 양성과 기술 행정 체계는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다. 국내 AI 기업의 80% 이상이 전문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며, 불과 몇 년 후면 AI 인재가 1만2000명 정도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의 인재 양성 전략과 기술 인력 확보 체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미국이 5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선언하고, 중국도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으로 AI 인재 영입에 나서는 등 주요 국가는 미래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감과 속도 면에서 한발 늦은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이런 거센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기술 중심 정치’로의 대전환을 통해 반도체, AI 같은 전략 기술 분야를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초당적 협력 과제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인재 중심 개혁’이 절실하다. 교육부터 산업 정책까지 인재를 길러내고 끌어모으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국내 인재가 마음껏 성장하고 활약하며, 해외의 뛰어난 두뇌까지 모여들 수 있도록 과감한 혁신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기술 패권 경쟁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아 도약하려면 기술과 인재를 중심에 놓는 국가 운영 철학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미래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과감히 결단하고 행동에 옮겨야 기술 강국의 위상을 지키고 새로운 성장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