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동기보다 2배 이상 증가
이선 몰릭 저서 '듀얼 브레인'
유발 하라리 저서 '넥서스' 등
저자 내공 담긴 콘텐츠 인기
빠른 발전 속도 출판계 숙제
"책 내용이 구문 될까봐 걱정"
트렌드에 민감한 출판계가 인공지능(AI) 신간 혈투를 벌이고 있다.
국내 최대 온·오프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점에 입고된 AI 관련 신간은 총 1197종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 535종, 2023년 상반기 489종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하반기에도 경쟁은 더욱 뜨거워져 지난 7월 한 달 동안만 183종의 AI 신간이 쏟아졌다.
예스24는 제목이나 부제에 'AI' 키워드가 포함된 도서는 물론 AI를 주요 담론으로 다루는 책까지 폭넓게 관련서로 분류하고 있다. 올 상반기 AI 관련서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급증했다.
출판계의 AI 열풍은 2022년 말 챗GPT 등장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당시 초보자 가이드와 전문서로 양분되던 시장은 최근 인문학, 경제경영, 기술 담론, 실용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올해 들어 중국 딥시크 등장으로 촉발된 AI 패권 경쟁과 지난 5월의 '지브리 스타일' 열풍으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일상화가 이 같은 흐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상반기 최고 판매를 기록한 도서는 이선 몰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 교수가 쓴 '듀얼 브레인'이다. 이 책은 AI를 적극 활용하는 '두 번째 뇌'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지적 격차가 심화될 것을 경고하며, 인간과 AI의 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조로 독자의 공감을 샀다. 윤충희 상상스퀘어 책임 편집자는 "'듀얼 브레인'은 지난 3월 출간 후 48쇄를 찍었으며 판매량이 총 10만부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2위는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가 차지했다. 하라리는 올해 방한 간담회에서 "인류는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분기점에 서 있다"며 "AI 혁명은 과거 기술혁명과 다르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행위 주체자(agent)이기 때문에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거시적 시각과 윤리적 쟁점 제기는 깊은 울림을 전했다.
3위는 직장인과 개인 사용자를 위한 실전 활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박태웅의 AI 강의'다. 2023년 초판 출간 후 지속적인 보강을 거치며 독자들의 실용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출판계는 소셜미디어에서 얻을 수 있는 파편화된 정보보다 저자의 내공이 빛나는 깊이 있는 통찰과 체계적인 접근을 담은 콘텐츠에 독자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가장 많이 팔린 AI 관련서는 실용서보다는 미래 시나리오를 전망한 책들이 다수 차지했다.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를 되묻는 '경험의 멸종', 인간을 초월하는 AI를 예언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신작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국제 외교의 거목 고(故) 헨리 키신저가 남긴 유작 '새로운 질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었다. 한 출판인은 "기초 개론서나 교양지식서는 나올 만큼 나왔다"며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도 충분한 파편화된 정보를 넘어 저자의 통찰로 독자의 실력을 키워줄 체계적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예측을 뛰어넘는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출판계에 숙제를 안기고 있다. 한 출판인은 "기획부터 출간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내용이 구식이 될까 봐 두렵다"며 "기술 변화를 어떻게 따라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이향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