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낮엔 병 고치고 밤엔 독립운동… ‘몽골 신의’ 이태준

1 day ago 9

몽골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몽골에서는 ‘신의(神醫)’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일제강점기 조국을 떠나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며 독립운동까지 이어 갔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 이태준(1883∼1921·사진)입니다.

최근 몽골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이태준 선생을 언급한 데 이어 울란바타르의 이태준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양국의 정치와 경제 협력을 이야기하는 정상외교의 자리에서 100여 년 전 한 의사의 삶이 소환된 것입니다.

이태준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교(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몽골로 갔습니다. 당시 몽골은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성병과 전염병이 만연했고 근대 의학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울란바타르에 병원을 연 이태준은 누구에게나 치료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헌신적이고 뛰어난 그의 의술은 몽골 마지막 황제 보그드 칸의 주치의가 될 정도로 신뢰를 얻었습니다. 1919년 마침내 몽골 정부는 국가 훈장 중 최고 등급인 ‘에르데니인 오치르’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러나 이태준이 몽골에 간 이유는 의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병원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의 연락과 군자금 전달을 돕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북방 독립운동 세력을 잇는 비밀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을 지원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태준이 몽골에서 쌓은 명성과 신뢰는 결국 조국 독립을 위한 기반이 된 셈입니다.

이태준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습니다. 1921년 러시아 백위파 세력에게 붙잡혀 서른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울란바타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 공원과 기념관이 세워졌고 지금도 신의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흔히 외교는 대통령과 장관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일깨워준 것은 100년 전 몽골에서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렸던 조선인 의사의 발자취가 지금도 두 나라를 잇는 든든한 외교 자산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가장 오래가는 외교는 회담장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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