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로 그린 채색 수묵화…日 구순 거장이 그린 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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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로 그린 채색 수묵화…日 구순 거장이 그린 추상화

입력 : 2026.06.22 15:36

화이트큐브 서울서
요코 마츠모토 첫 韓 개인전
추상 흐름 속 동양 기법 재해석

요코 마츠모토의 ‘Out of the Atmosphere’(2003) <화이트큐브>

요코 마츠모토의 ‘Out of the Atmosphere’(2003) <화이트큐브>

분홍빛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듯한 캔버스 너머로 아련한 빛이 새어 나온다. 얼핏 보면 부드러운 솜사탕이나 구름을 닮았지만, 화면 저변에 깔린 어둠은 수묵화의 깊이를 품고 있다.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추상회화를 접목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일본 추상화의 거장, 요코 마츠모토(90) 작가가 한국을 찾았다.

요코 마츠모토의 ‘Untitled’(1990) <화이트큐브>

요코 마츠모토의 ‘Untitled’(1990) <화이트큐브>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은 오는 8월 14일까지 요코 마츠모토의 국내 첫 개인전 ‘자연의 시선에 놓이다’를 연다. 올해 구순을 맞은 작가의 6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하는 자리로, 대표작인 ‘핑크’ 연작의 초기작부터 절제된 색조의 ‘화이트’ 연작, 코발트 블루를 사용한 신작까지 40여 년에 걸친 회화를 폭넓게 선보인다. 현재 일본 도쿄 후추시 미술관에서도 작가의 대규모 순회전 ‘저녁별을 본 날‘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17일 한국을 방문한 요코 마츠모토 작가가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이트큐브>

17일 한국을 방문한 요코 마츠모토 작가가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이트큐브>

전시 개막을 맞아 지난 17일 한국을 찾은 작가는 열린 미술사학자 레이코 토미이와의 대담에서 마츠모토 작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화가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며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쿄예술대학 출신인 그는 학창 시절부터 정형화되고 보수적인 교육에 반발했다. 인체 사생 중심의 훈련과 어둡고 탁한 유화 기법에 회의를 느끼던 중, 당시 도쿄에서 열린 서구의 앵포르멜 전시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의 아름다운 색채를 두고 왜 어두운 유화에만 매달려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요코 마츠모토의 ‘Untitled’(1990)

요코 마츠모토의 ‘Untitled’(1990)

대학 졸업작품부터 핑크색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아크릴 물감을 구하게 됐다. 서구의 색면회화 등 새로운 흐름에 영감을 받은 그는 수성 매체인 아크릴의 가볍고 경쾌한 속성에 매료됐다. 작가는 “서양의 화풍을 그대로 흉내 내서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일본인으로 물과 인연이 깊은 내가 왜 유화로 표현에 고생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채색 수묵화의 전통을 아크릴로 재해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수년간 혹독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묽게 희석한 안료를 얇게 펴 바르는 그만의 기법은 그렇게 탄생했다.

요코 마츠모토의 ‘Gazed at by Nature’(2023) <화이트큐브>

요코 마츠모토의 ‘Gazed at by Nature’(2023) <화이트큐브>

30년 넘게 아크릴화에 매진하며 독창성을 인정받은 작가는 2000년대 들어 다시 유화로 돌아가며 변화를 시도했다. 화면을 바닥에 눕혀 쭈그리고 작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캔버스를 수직으로 세우고 목탄 드로잉을 며칠 동안 반복했다. 유화 물감에 목탄 가루를 섞어 기름과 반응하게 만든 시도는 기존의 번들거리는 유화와 달리 무광의 색조를 구현했다.

요코 마츠모토의 ‘Light Shining in Wilderness’(2020) <화이트큐브>

요코 마츠모토의 ‘Light Shining in Wilderness’(2020) <화이트큐브>

그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검은색과 흰색의 효과적인 변주다. 작가는 시판 물감을 쓰지 않고 목탄과 울트라마린 등의 색을 직접 섞어 고유의 투명한 검은색을 만들어 쓴다. 작가는 “검은색은 어둡고 끝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밝은 색이며, 흰색 역시 화면 안에서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느낌을 줄 수 있다”며 “현대미술에서 이 두 색을 어떻게 인식하고 독창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작품의 향방을 가른다”고 강조했다.

요코 마츠모토의 ‘Just Before Dawn’(2025) <화이트큐브>

요코 마츠모토의 ‘Just Before Dawn’(2025) <화이트큐브>

서구 추상의 거대한 흐름에도 작가는 동양적 사유와 고유의 표현 방식을 캔버스에 온전히 체화했다. 구순의 나이에도 그는 또랑또랑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술가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낼 수 없다”며 독창성을 강조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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