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넘긴 원로 작가, 피노키오로 인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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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다인, ‘Young Pinocchio #1’(2026년). 피비갤러리 제공

짐 다인, ‘Young Pinocchio #1’(2026년). 피비갤러리 제공

“불에 타버린 그의 가련한 발과 잘못된 판단, 허영심, 기다란 코…. 나는 여섯 살 때부터 그를 등에 업고 살아왔다.”

서울 종로구 피비갤러리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한 전시 ‘나의 말과 피노키오(My Words & Pinocchio)’ 한쪽 벽면에는 목탄으로 쓴 글귀가 있다. 미국 현대미술의 대가 짐 다인(91)이 전시 준비 기간에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 쓰고, 지우고, 덮어쓰기를 반복하며 완성했다. 글귀에서 “그”로 불린 작가의 ‘평생 친구’ 피노키오는 디즈니 만화 영화 속 밝고 희망찬 존재가 아니다. 어딘가 불안하고 불온한, “긴 여정을 통과 중인 인간”이다.

짐 다인 개인전 ‘나의 말과 피노키오’에 전시된 자작시 드로잉 작품 ‘Soutine’을 관람객이 감상 중인 모습. 뉴시스

짐 다인 개인전 ‘나의 말과 피노키오’에 전시된 자작시 드로잉 작품 ‘Soutine’을 관람객이 감상 중인 모습. 뉴시스
이번 개인전에서는 글귀 주변으로 다인의 피노키오 신작 회화 8점이 일제히 공개됐다. 그의 그림 속 피노키오들은 하나같이 뭉개진 얼굴과 부자연스러운 자세, 기괴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개막일에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다인 작가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당나귀 귀가 생기는 이야기는 어릴 적 내게 공포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임을 깨달았다”고 작품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자작시를 회화 형식과 결합한 작품도 3점 전시됐다. 작가가 직접 문장을 쓰고 지우고 덧쓴 뒤, 단어들을 잘라 재배열하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었다. 단어들이 연결돼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갖기보다는, 단어의 배열이 시각적으로 완성도 높은 구조를 이루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다인은 “어려서부터 난독증이 있어 소설을 끝까지 읽기 어려웠고, 대신 시를 읽었다. 나에게 글과 이미지는 동일하다”고 고백했다.

짐 다인 작가는 “나의 피노키오는 큰 미소와 공허한 눈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긴 여정을 통과한 인간”이라고 했다. 뉴시스

짐 다인 작가는 “나의 피노키오는 큰 미소와 공허한 눈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긴 여정을 통과한 인간”이라고 했다. 뉴시스

다인은 1950, 60년대에 음악가 존 케이지, 미술가 클라스 올든버그 등과 교류하며 현대미술의 발전을 이끈 작가로 평가된다. 1960, 70년대에는 ‘실내용 가운’과 ‘하트’를 소재로, 1990년대부터는 ‘피노키오’를 소재로 한 연작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설치된 9m 높이 피노키오 조형물로 잘 알려져 있다.

아흔을 넘긴 원로 작가는 “내게 예술은 멈출 수 없는 행위”라며 “예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을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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