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식욕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 늘리는 ‘GLP-1’
체중 감량 넘어 심혈관·콩팥질환도 효과
“충분한 지식 없이 오남용은 경계해야”
“‘die young’의 의미가 달라졌어요. 일찍 죽는 게 아니고 건강하게 살다 죽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무병장수의 꿈을 이뤄줄 열쇠가 바로 ‘GLP-1’입니다.”
‘GLP-1’은 식욕을 억제하고 위 내용물이 장으로 내려가는 속도를 늦춤과 동시에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다. 최근 전 세계에 비만 치료제 열풍을 불어왔던 ‘위고비’의 핵심 성분 역시 GLP-1이다.
GLP-1의 가장 큰 특징은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혈당 조절과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질환, 콩팥질환 등을 개선하는 데도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국내 대사질환 명의인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간에는 GLP-1 수용체가 없음에도 살이 빠지면서 2차적으로 지방간질환까지 좋아진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GLP-1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올해 종료될 예정인데, 내년쯤 결과가 나오면 큰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듯 보이지만 GLP-1의 역사는 오래됐다. 첫 발견은 1980년대 인크레틴 호르몬(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이뤄졌고, 2형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된 지는 벌써 20년이 됐다.
조 교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GLP-1의 체중 감량 효과는 10% 내로 그 수치가 미미해서 큰 주목을 못 받았는데 위고비(15%), 마운자로(20%) 등이 마의 10% 벽을 깼다”며 “과거 당뇨환자의 경우 완전관해에 도달하려면 절식으로 체중을 15% 정도 빼야 했는데 이젠 주사 치료로 가능해졌으니 그 자체가 혁신”이라고 말했다.
GLP-1의 또 다른 이름은 ‘슈퍼 호르몬’이다. 슈퍼맨처럼 힘이 막강하면서도 좋은 일만 한다는 의미로, 조 교수가 지난달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GLP-1에 붙인 별명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투여환자 중 20~40%에서 구토와 설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과 한 달 투여비용이 50만원 이상으로 비싸다는 점이다.
그는 “위장관 부작용이 있지만 이로 인해 약을 아예 끊는 경우는 전체 5% 미만으로 적은 편”이라며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되고 알약 제형도 개발돼서 GLP-1 투여 비용이 낮아지면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충분한 지식 없이 GLP-1을 오남용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마주하며 느낀 건 ‘칼로리맹’과 ‘데이터맹’이 많다는 사실”이라며 “탄수화물을 끊었다면서 치즈를 마음껏 먹는 경우가 칼로리맹에 해당하고, 정상적인 식후 혈당 반응인데 이를 혈당스파이크라 오해하는 것이 데이터맹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혈당과 체중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환자일수록 본인이 먹는 음식에 대한 정보와 혈당스파이크의 개념 등을 정확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 교수는 GLP-1이 항노화 영역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밝혀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현재 노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작업부터 진행하고 있다.
그는 “노화를 측정할 수 있어야 치료법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사람의 생물학적 나이를 계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화의 진행과 개선 정도를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화는 염증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데, GLP-1이 염증 개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건 증명되고 있다”며 “현재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GLP-1과 항노화 간 상관관계를 보고 있고, 이를 사람에게도 확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