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붙들어 보려 했던 것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부터 탈출하고 몸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이었다."
수많은 영화가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내세우며 '원작 못지않은 감동' 혹은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을 표방한다. 그 순간 원작은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뒤늦게 등장한 영화보다 높은 위계의 작품으로 다뤄진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과 영화가 전혀 다른 매체인 이상, 같은 서사에 기댄다 해도 둘은 독립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영화는 소설에 없던 요소를 더하고 서사의 갈래를 비틀어 전혀 다른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1990년 출간돼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와, 이를 토대로 하되 무대를 2020년대로 옮긴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두고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가치의 우위를 논할 수 없을 때 독자와 관객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같은 서사를 공유하기에 둘은 비교의 대상이 되며, 책은 바로 그 비교의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산출된다고 본다. 혹은 비교의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밤과 책'은 저자가 거듭 강조하듯 영화평론이 아니다. 마치 밤과 같이 어두운 영화관과 밝은 조명 아래 놓인 책의 페이지를 여러 차례 오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더 깊고 더 머뭇거리며 읽어 가는 수행의 기록에 가깝다.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에서 문학과 출판, 영화를 담당했고 칸과 베네치아,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 현장을 취재한 저자는 비평가의 시선도, 보통 관객의 시선도 아닌 제3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며 새로운 감상의 지점을 짚어낸다.
영화 대신 해설 영상을 1.5배속으로 보고 소설 대신 인공지능(AI) 요약본을 소비하는 시대에 같은 이야기를 두 매체로 거듭 겹쳐 보며 멈춰 서는 이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저자는 서문에서 영화의 원전인 소설을 읽어 가는 과정을 "기원을 알아 가는 일이 마치 우리 세계의 처음을 발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책은 23편의 원작과 영화를 나란히 놓고 둘이 갈라지는 지점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거듭해 세계의 처음을 발견하고자 나선다.
'색, 계'와 '클로저' '쇼생크 탈출'에서부터 2025년 영화 '햄넷'까지 책이 다루는 여러 시기의 작품 가운데 관심 있게 본 한 편이라도 있다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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