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우리 기업집단인가 - 5조원 문턱 앞에 선 기업의 첫 질문 [BKL 공정거래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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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우리 기업집단인가 - 5조원 문턱 앞에 선 기업의 첫 질문 [BKL 공정거래리포트]

조준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입력 : 2026.06.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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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면 재계 순위 변화나 새로 이름을 올린 기업에 시선이 쏠린다. 그러나 그 명단에 이름이 오른다는 것은 단순한 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등 대기업집단 규제가 적용되고, 중소기업 범위에서도 제외되어 각종 지원·세제상 지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자산총액 5조원이 그 규제가 시작되는 문턱이다.

문턱은 멈춰 있는데, 들어오는 기업은 달라졌다

그 문턱은 오래 멈춰 있다. 자산 5조원이라는 금액은 2008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이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오르면서 쓰이기 시작해, 2017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제도가 신설되면서 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사이 명목 국내총생산은 2000조원을 넘어 꾸준히 커졌고, 같은 법 안에서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문턱은 한 차례 10조원으로 오른 뒤 국내총생산에 연동되어 올해 12조원까지 자동으로 높아졌다. 한 기준은 경제 규모를 따라 움직이는데, 다른 기준은 2008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멈춘 것은 기준이고, 달라진 것은 그 문턱을 넘는 기업이다.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102개에 이르렀는데, 새로 이름을 올린 11곳을 보면 누구나 아는 거대 그룹이 아니라 플랫폼·핀테크, K-뷰티, 부품·소재처럼 특정 분야에서 성장한 전문기업이 다수다. 제도가 본래 겨냥한 대상과는 결이 다른 기업들까지 같은 문턱 앞에 서게 된 것이다. 5조원은 더 이상 일부 대기업만의 선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선이 됐다. 그리고 이 문턱에 다가서는 기업이 부딪히는 더 어려운 문제는 따로 있다.

자산 5조원을 넘었는지를 알려면, 먼저 기업집단의 경계를 그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집단의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으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그런데 그 자산총액은 계열회사를 모두 더한 값이어서, 어떤 회사가 계열회사이고 자산이 얼마인지를 기업집단이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현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법은 동일인에게 계열회사 현황 등을 담은 자료, 이른바 지정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이 5조원에 이르기 전 일정 규모를 넘어선 집단에도 이를 미리 요청한다. 그런데 지정자료를 작성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자산을 합산하려면 먼저 어디까지를 우리 기업집단으로 볼지 정해야 하는데, 정작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집단의 경계는 동일인, 곧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에서 출발한다. 누구를 그 정점에 둘지부터 다투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예외적 상황이다. 중심축이 분명한 기업에도 훨씬 보편적인 난제가 남는다. 동일인과 혈연으로 이어진 친족만이 아니라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이 지배하는 회사도 계열사가 되고, 계열회사나 비영리법인의 임원이 따로 지배하는 회사, 그 회사의 임원이 지배하는 회사까지, 경계는 단계마다 가지를 치며 상식의 범위를 넘어 뻗는다. 실제로 동일인이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은 회사가 여러 단계를 건너 계열회사로 판단된 사례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에 걸친 회사를 계열회사로 넣느냐 빼느냐에 따라, 자산총액이 5조원 문턱을 넘기도 하고 넘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5조원 문턱 부근에서는, 작은 회사 몇 곳을 어떻게 분류하느냐가 지정 여부를 가르기도 한다.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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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흐린데, 책임은 무겁다

책임의 무게는 상식과 어긋나는 데가 있다. 아직 5조원에 못 미쳐 지정되기 전 단계에서 낸 자료라도, 거기에 누락이 있으면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에서 자료를 받아야 계열 관계를 알 수 있듯, 동일인도 친족이나 임원에게서 자료를 받아야 누가 어떤 회사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왕래가 끊긴 친족이나 그 배우자의 회사까지 동일인이 스스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누락이 확인되면 조사의 부담을 지는데, 알고도 빠뜨렸는지 정말 몰랐는지를 가리기 어렵다 보니 공정거래위원회는 ‘알 수 있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아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자료를 직접 챙기지 않고 실무진에게 통째로 맡긴 사정조차, 면책이 아니라 확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임은 행정적 제재가 아니라 동일인의 형사 처벌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정자료를 거짓으로 내거나 빠뜨리면 동일인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식가능성과 중대성을 기초로 동일인 고발 여부를 결정하고, 고발이 되면 검찰 수사가 이어진다. 동일인 개인이 형사 절차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에는 작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허위 제출에 대한 과징금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는 형사처벌에 금전적 제재까지 더해질 수 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5조원 기준이 오래 유지되는 현실을 두고 제도 개편 논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다만 기업으로서는 기준이 바뀌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현행 제도가 유지되는 한, 지정의 기준이 되는 기업집단의 경계를 파악하는 것은 평소에 관리해야 할 공정거래 컴플라이언스의 문제다. 동일인과 친족·임원의 관계, 계열 편입 가능성, 자료 제출 체계를 미리 점검해 두어야 한다. 임원이 새로 다른 회사의 지분을 갖거나 경영에 관여하는 변화는 연중 수시로 일어나므로, 이를 제때 포착하는 보고 체계가 필요하다. 협조가 어려운 친족의 회사처럼 확인이 쉽지 않은 영역은, 파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뒷날 책임을 가릴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기업에게 지정은 성장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문제는 그 문턱을 넘는 순간이 아니라, 그에 이르기 전부터 정확한 자료를 내야 하고 작은 누락 하나가 뒤늦게 문제 된다는 데 있다. 아직 5조원에 이르지 않은 성장기업도, 올해 막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기업도 “우리 기업집단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지금 점검해야 한다. 그 경계를 그려 두지 못한 채 문턱에 다다랐을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동일인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BKL 공정거래리포트]에서는 변화하는 경쟁법 환경 속에서 기업이 직면하는 주요 규제 이슈, 공정거래 정책 동향, 주요 판례와 조사 사례를 분석하고 기업 경영과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사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조준연 변호사는 기업결합, 부당한 공동행위,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부당지원행위, 가맹사업 등 국내외 공정거래 분야와 관련한 소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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