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회사채 발행 30% 줄 것"…석유화학·2차전지 투자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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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회사채 발행 30% 줄 것"…석유화학·2차전지 투자 늦춘다

전통적으로 1~3월은 회사채 시장의 ‘성수기’로 통한다. 기업들이 3월 주주총회 전 한 해 자금 조달 목표를 세우고 물량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통상 연간 발행량의 절반이 이 시기에 몰린다. 기관투자가의 투자 집행이 재개되는 ‘연초 효과’ 덕에 금리도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시장 상황이 급반전되고 금리가 급등해 회사채를 발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 1분기 발행 물량 급감

이런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곳은 회사채를 발행하기 전 시장 움직임을 가늠하는 수요예측 시장이다. 이달 수요예측에 나섰거나 일정을 확정한 기업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호텔신라 한일시멘트 SK네트웍스 등 11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56개 기업이 수요예측을 한 것과 비교하면 80%가량 감소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전체 회사채 발행 규모가 3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1분기에도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감소했다.

기업들은 기존 채권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운 채권을 찍어 빚을 갚는 게 보통이다. 증권업계는 회사채 시장의 차환 체계가 흔들릴 것으로 보고 있다. AA급 우량 회사채 스프레드(국고채-회사채 금리 차이)가 0.6%포인트(60bp)로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벌어지는 등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하고 있어서다. 스프레드가 확대됐다는 것은 국고채 대비 회사채 매력도가 떨어져 기업이 더 큰 비용을 치러야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1조원을 차환하면서 기업이 추가로 물어야 하는 이자는 연 60억원 안팎이다.

올해 정리해야 하는 회사채는 80조원어치가 넘는데, 대부분 6개월 이내에 만기가 도래한다. 2분기 33조8925억원, 3분기 33조3045억원, 4분기 14조5899억원어치 등이다. 그룹사별로는 SK그룹의 차환 물량이 3조9165억원어치로 가장 많다. 롯데그룹(1조5230억원)과 신세계그룹(1조3000억원)이 그 뒤를 이었다. 포스코, LG 한화그룹도 차환 물량이 ‘조단위’에 이른다.

◇ 업황 부진 기업은 고전

제일 골머리를 앓는 곳은 석유화학 업체다.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와중에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변수가 더해졌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들여와 플라스틱, 비닐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판매해 얻은 수익으로 원료를 조달해왔다. 최근엔 전쟁으로 원료 수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다.

시장에서는 위기에 빠진 석유화학 기업들의 회사채 차환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천NCC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신용등급은 현재 A-(부정적)다. 한 단계만 더 하락하면 사모사채를 즉시 갚아야 하는 조기 상환 트리거가 발동할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지난 2월 차환은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15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는 수요예측에 7850억원의 주문이 몰렸는데도 3년 만기와 5년 만기 모두 지난해보다 금리를 0.05%포인트 올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수익성 하락에 고심하는 2차전지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실적 변동성이 커지자 설비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회사채 발행 규모를 지난해 1조6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축소했다.

회사채 시장 시금석인 국고채 금리 향방은 안갯속이다. 원유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은 완전히 꺾였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한은이 물가 억제를 위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부 기업은 은행 대출로 자금 조달 경로를 바꾸고 있다. 무보증 회사채(AA-) 3년 만기(금리 4.1%)보다 은행 대출이 유리한 ‘금리 역전’ 현상을 고려한 행보다. 현재 은행 대출금리는 연 4% 선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1~2주 사이 금리 변동성이 워낙 커 기업에 발행 적기를 추천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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