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공식 석상에서 올해에만 여섯 차례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황 CEO가 최근 한국을 찾은 기간 동안에도 무려 세 번이나 얼굴을 맞댔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협력으로 시작된 양사 관계가 인공지능(AI) 팩토리·클라우드 등 AI 인프라 전반으로 넓어지면서 최 회장이 그룹 차원의 AI 사업 확대를 위해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만 여섯 번…젠슨 황 직접 챙긴 최태원
8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황 CEO는 이날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SK와 엔비디아의 장기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양사는 AI 팩토리 구축에 필요한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반도체 설계와 제조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황 CEO는 이 자리에서 "SK는 우리의 최대 메모리 파트너"라며 "SK와의 파트너십 없이는 오늘날 AI 산업이 이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야심찬 아키텍처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시장에서 최고의 성능과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로드맵을 함께 공동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최 회장도 협력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협력은 메모리 중심이었다"며 "이제부터는 협력의 차원을 높여 SK그룹과 엔비디아가 더 큰 그림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는 미래에 엔비디아와 함께 AI 팩토리를 만들어가는 것, 또 하나는 R&D 로드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과 황 CEO의 만남은 올 들어 부쩍 잦아졌다. 지난 2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황 CEO와 '치맥 회동'을 한 데 이어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도 다시 만났다. 이달 1일에는 대만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 2026에 참석해 황 CEO의 기조연설을 직접 들었다.
황 CEO가 한국을 찾은 뒤에도 만남은 이어졌다. 최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집에서 황 CEO와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했다. 7일에는 황 CEO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마친 뒤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다시 만났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까지 합하면 황 CEO의 방한 나흘간 세 차례나 만난 것. 해외 공식 일정까지 더하면 올해에만 총 여섯 차례다.
"최태원, AI 산업판 설계하려는 '룰 세터' 행보"
이날 공식화한 장기 파트너십으로 협력 대상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 전반으로 넓어진다. SK하이닉스는 '베라 루빈'과 '그레이스 블랙웰' 등 AI 슈퍼컴퓨터용 고성능 메모리 협력을 이어가는 한편 '베라 CPU', AI PC 플랫폼 'RTX 스파크', 로보틱스 컴퓨팅 플랫폼 '젯슨 토르' 등에도 메모리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황 CEO는 기자회견에서 "SK하이닉스는 앞으로도 우리의 최대 메모리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며 "이미 매년 SK하이닉스로부터 수십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고 있고, 앞으로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협력도 추진한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엔비디아가 차세대 제품을 설계하는 초기 단계부터 함께 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R&D 로드맵 공유'를 협력의 두 축 중 하나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2027년 한국에서 AI 팩토리를 처음 가동하고, 아시아 대표 AI 클라우드 사업자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SK가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배경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메모리를 공급하고, SK텔레콤은 엔비디아 GPU와 플랫폼을 활용해 AI 인프라 사업을 키우는 방식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일련의 행보를 SK그룹 차원의 AI 인프라 시장 선점을 위한 목적으로 풀고 있다. AI 산업이 아직 표준 인프라와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는 단계인 만큼, 특정 제품을 많이 파는 것보단 초기 생태계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중요하단 판단이 깔렸을 것이란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AI 미래 사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뾰족하게 나온 게 없는 상황에서 최 회장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비단 SK하이닉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면서 "AI가 시장이 형성된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단계인 만큼, 만들어진 판에서 역할을 찾는 게 아니라 산업 자체를 설계하는 '룰 세터'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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