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는 운명이 아니다. 우울증을 안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 … 나는 날마다 살아있기를 선택한다.”
―앤드루 솔로몬 ‘한낮의 우울’ 중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고 스스로 죽기를 택하는 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 뉴스에 더는 놀라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이 세계가 놀랍고 슬프다. 마땅히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사실을 마주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의 우울과 절망이라는 괴물은 지금 여기, 우리 눈앞에 서 있다.
우울은 슬픔과 다르다. 상황에 걸맞지 않게 발생하기에 이유도 해결법도 찾기 어렵다. 끔찍한 건 그 저조한 기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 생각은 틀렸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영원한 행복은 없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영원한 슬픔이 없다는 것도 참이어야 한다.‘한낮의 우울’을 읽고 우울했던 나는 결심했다. ‘더는 우울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을 거야. 대신 우울과 함께 잘 지내보겠어.’ 근거 없는 예감을 더는 믿지 않았다. ‘영원한 밤’은 수식일 뿐이고 현실의 밤은 반드시 아침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상담사에게 마음을 쏟아내듯 종이 위에 어려운 마음에 관해 쓰고 또 썼다. 거울을 보며 고해하듯 내 죄와 내 어둠을 스스로 사했다. 빛과 열만 에너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둠과 얼음도 에너지가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쓰는 자로서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은 절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절정일 수 있고 발단일 수 있고 위기일 수 있다. 하지만 결말은 될 수 없다. 마침표를 찍지 않는 한 인물은 변한다. 인물이 변하면 사건도 변하고 이야기도 변한다. 날마다 살기를 택해서 모두가 자기 삶의 스토리텔러가 됐으면 좋겠다.
정용준 소설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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