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눈뿐… 안구 마우스로 반년 만에 완성한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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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만 나는 살아야 한다’
척수성근위축증 앓는 김선호씨
예원예대 만화게임학과 다니며 어머니와 87컷 분량 첫 작품 합작
“사람들에 웃음주는 만화 그리고파”

25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선호 씨(20)가 안구 마우스를 사용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태어난 직후 척수성근위축증을 진단받고 24시간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5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선호 씨(20)가 안구 마우스를 사용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태어난 직후 척수성근위축증을 진단받고 24시간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건강하게 졸업해서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요.”

태어나자마자 척수성근위축증을 앓아 두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김선호 씨(20)가 눈동자의 이동을 감지해 움직이는 마우스로 노트북 화면에 이 같은 문구를 입력했다. 한 자 한 자 힘겹게 입력하다 보니 짧은 문장이 적히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선호 씨는 예원예술대 만화게임영상학과에 재학 중이다. 25일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주최로 열린 ‘특별한 졸업식, 희망의 입학식’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선호 씨는 생후 4, 5개월경부터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 1년 넘게 호흡 정지가 반복되며 어떤 병인지, 왜 낫지 않는지도 모른 채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야 했다. 기관절개 등 시술을 받고 인공호흡기를 착용했다. 유전자 검사 끝에 척수성근위축증 1형을 진단받았다. 척수성근위축증은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세포 문제로 근육이 마르고 위축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호흡근이 마비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응급실을 셀 수 없이 들락거렸다. 감기에 걸려도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마다 의료진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김연중 씨(55)는 “응급실에 갈 때면 마치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손으로 막으며 촛불을 들고 달리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몸은 굳었지만 유일하게 두 눈동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안구 마우스와 컴퓨터가 생긴 뒤로는 넓은 디지털 세상에서 직접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충혈이 심해져 실패를 거듭했지만, 지금은 웹툰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컴퓨터 메모장을 켜 대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대학에서 친구도 사귀었다.

김 씨가 안구 마우스로 그린 웹툰 ‘이상하지만 나는 살아야 한다’의 일부 컷. 김선호 씨 제공

김 씨가 안구 마우스로 그린 웹툰 ‘이상하지만 나는 살아야 한다’의 일부 컷. 김선호 씨 제공
선호 씨는 지난해 어머니와 첫 웹툰을 완성했다. 제목은 ‘이상하지만 나는 살아야 한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을 도우려 주인공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단막극 형식으로 그려냈다.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가 밑그림을 그리면 선호 씨가 색과 대사를 채워 넣고, 이야기를 수정했다. 87컷 분량의 만화를 완성하는 데 반년이 걸렸지만 뿌듯했다. 이날 졸업·입학식에는 재학 중이지만 특별한 사연을 가진 선호 씨를 포함해 희귀난치병 환자 졸업생 4명과 입학생 1명이 참석했다. 생명보험재단은 2008년부터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설립을 지원하고 신경근육질환자 1만6855명에게 전용 병실과 의료 관리 시스템을 제공했다. 정우철 생명보험재단 상임이사는 “힘든 투병 생활 속에서도 놀라운 성취를 이룬 환자들을 보면서 깊이 감동했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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