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젊을 때는 좋았는데’ 표현 안 써…늙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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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신작 소설 속 자매 안나와 경선은 사사건건 티격태격한다. 둘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는 “원래 개그 욕심이 있다. 한동안은 건조하게 쓰려고 유머를 숨겼는데, 이번에는 드러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은희경 작가의 신작 소설 속 자매 안나와 경선은 사사건건 티격태격한다. 둘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는 “원래 개그 욕심이 있다. 한동안은 건조하게 쓰려고 유머를 숨겼는데, 이번에는 드러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영국 밴드 오아시스(Oasis)가 16년 만에 재결합해 한국을 찾았던 지난해 10월. 이는 소설가 은희경(67)에게도 마음 들뜨는 일이었다. 비록 공연장을 찾진 못했지만, 오랜 팬의 아쉬움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문학동네)에 녹아들었다.

“전설적인 밴드의 내한 공연이라니,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의 열렬한 팬으로서 놀랍고 반갑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이명이 없을 때 왔어야 한다고 투덜댄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은 작가는 오아시스 이야기가 나오자 “좀 일찍 오지 싶었다”며 웃었다. 1995년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에서 개성적인 10대 소녀 진희를 탄생시켰던 그는 이번엔 노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취향도, 유머도, 고집도 제각각인 두 인물이다.

● ‘할머니’보다 하나의 개인

소설은 예순다섯 살 자매 안나(1월생)와 경선(12월생)이 병간호를 계기로 다시 만나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쉽게 묶이지 않는다. 안나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전후한국문학전집’을 탐독했고, 경선은 카페에서 플랫화이트와 모카시나몬라테를 즐긴다.

은 작가는 “우리 소설에서 ‘교육받은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노년 여성들을 헌신적인 존재로만 그리지 않고, 고유한 개인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물들이 어린 시절부터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죠.”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안나와 경선, 그리고 손녀 다니엘이 비 오는 날 호텔방에서 ‘첫사랑’, ‘첫여행’ 등 첫 경험을 돌아가며 얘기하는 대목이다. 은 작가는 “그 장면을 쓸 때 특히 재밌었다”며 “할머니와 손주라는 관계가 아니라, 세 사람이 동등하게 자기 인생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 나이든 몸을 있는 그대로

“난데없이 뺨 한가운데에 터럭이 자라나고 머리숱이 빠지면서 점점 골룸의 헤어스타일이 되어간다….”

소설엔 이런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늙어가는 몸을 놀랄 만큼 정직하게 묘사한다. 한 페이지에 걸쳐 몸의 변화를 응시하는 대목도 있다. 은 작가는 “이번 소설에선 늙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태어나서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소멸에 이르는 게 삶이잖아요. 지금도 그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에요. ‘젊을 때는 좋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늙었네’ 같은 건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현재가 있으니까요.”

노년을 그린 문학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은 작가는 미국 작가 필립 로스(1933~2018)를 언급했다. 로스는 ‘에브리맨’ 등에서 늙어가는 몸과 죽음의 공포, 상실을 집요하게 그려낸 작가. 하지만 은 작가의 노년관과는 결이 달랐다.

“너무나 많은 기득권을 가졌던 사람의 탄식처럼 느껴졌어요. 노년을 ‘갖고 있던 걸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실제로 ‘시간의 감촉’은 노년을 다루면서도 우울이나 무력감에 머물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삶의 반경은 조금씩 넓어진다. 안나와 경선은 서로를 만나 조금씩 바깥으로 나아간다. 노년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유다.

“안나도 그렇고 경선도 그렇고 자기 세계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에요. 마지막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하죠.”

어른의 성장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은 작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소설을 쓰냐’고 물어요. 저는 제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고, 틀린 게 이렇게 많다는 걸 새로 알게 되는 순간이 좋아요. ‘아, 내가 그걸 몰랐구나’ 발견하는 순간이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틀렸다는 건 과거고, 지금은 새롭게 알게 된 현재니까요.”

그 말은 자연스럽게 첫 장편 ‘새의 선물’로 이어졌다. 은 작가는 2022년 100쇄를 맞아 개정판을 내며 ‘앉은뱅이’ 같은 표현을 현재의 감각에 맞게 고쳤다. “틀린 걸 알고 고칠 수 있어 기뻤다”고 한다. ‘새의 선물’은 이후로도 15쇄를 더 찍었다. 30년 넘은 작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이유. 새로운 걸 배우길 멈추지 않는 작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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