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선 레어로우 대표
조부·부친 이어 3대째 외길
단순 승계 대신 업종 전환
차가운 철에 다채로운 색감
파리·두바이 등서도 러브콜
“代있는 제조, 리브랜딩이 답”
식탁도, 의자도, 선반도 모두 철제였다. 서울 을지로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와 철제 공장을 차린 아버지 덕에 양윤선 레어로우 대표 집에는 그 흔한 합판 가구가 없었다. 금속이 익숙했던 딸은 외국 유학을 마친 뒤 2014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아버지 회사 2층에서 철제 가구 회사를 창업했다. 11년이 흐른 지금 철물점 손녀딸이 만든 철제 가구는 뉴욕과 파리, 런던에서 판매되고 있다. 딸 회사에서 디자인한 제품을 아버지의 철제 공장에서 만든다.
양 대표와 부친인 양경철 심플라인 대표를 16일 서울 청담동 레어로우 쇼룸에서 만났다. 레어로우는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시스템 000’으로 잘 알려진 철제 가구 브랜드다. 벽에 설치하는 선반인 시스템000은 너비와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노란색과 갈색을 비롯해 7가지 버전으로 주문 가능하다. 미드 센추리 모던과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을 타고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에서 레어로우 상품을 스크랩한 사람만 16만명에 달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양 대표가 단순 가업 승계 대신 창업을 선택한 것은 하나의 질문 때문이었다. 대형 SPA 매장에서 쓰는 철제 행거는 집에 놔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은 디자인이라면 어느 공간에나 다 어울려야죠. 한국에서만 유독 카페용 의자, 주방 테이블을 구분하는 게 어색하더라고요.”
가정용 철제가구에 도전했지만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기존 매장용 제품은 집에 두기엔 너무 크고 두꺼웠다. 철을 얇게 가공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상업용 집기와 달리 집에 두는 테이블이나 의자는 작은 흠집 하나로도 반품이 들어왔다. 단조로운 화이트와 그레이 컬러 대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다양한 컬러도 개발해야 했다.
부친 양경철 대표의 회사는 당시 홈플러스 160개 매장에 선반을 납품할 정도로 견실했다. 좌충우돌하는 딸을 걱정했냐는 질문에 양경철 대표는 “걱정은 많았지만 심플라인 창업 때부터 자체 브랜드를 내고 싶었던 터라 믿고 맡겼다”고 말했다.
현재 레어로우는 온라인에서 60% 매출을 낸다. 오늘의집에서는 ‘튼튼하다’, ‘어디에나 어울린다’ 등 호평이 이어진다. 더현대서울과 스타필드수원을 비롯해 오프라인 매출도 늘고 있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싱가포르와 두바이 등에서도 팔린다. 프랑스 식기 브랜드 사브르의 파리와 런던 매장 철제 선반 역시 레어로우 제품이다. 오는 9월 일본 유명 편집샵인 빔즈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부녀는 제조업 경쟁력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양경철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관련한 정부 지원책을 상담받아봐도 인공지능(AI) 같은 최신 기술이 아니면 지원받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령화도 고질적인 문제다. 그는 “임금은 오르는데 고령화로 생산량은 줄었다”며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도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정부가 제조 중소기업의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을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녀가 보는 철제가구의 미래는 밝다. 양경철 대표는 “합판을 본드로 붙이는 MDF 가구와 달리 금속은 인체에 해가 없다”면서 “앞으로도 오래 쓸 수 있고, 재활용도 가능한 금속 가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양경철 대표는 아버지 회사 매출을 부지런히 좇아오는 딸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그래, 그런 것도 있지”라며 딸 편을 들었다. 이 집안에서 4대째 철을 다루는 사람도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