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세로 접어드는 듯했던 농산물 가격이 출렁이며 농가와 소비자 걱정을 키우고 있다. 올 봄 들어 전국 과일 주산지를 중심으로 이상저온 현상이 이어지며 ‘국민 과일’ 사과·배 등의 수확량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 과일이 본격 출하되는 하반기에 농산물 물가가 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열매 맺지도 못했다”…속 타는 농가
6일 업계에 따르면 봄철부터 이어진 때아닌 저온 현상으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과수 작물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통상 개화기에는 영하 1도 안팎의 아주 낮지 않은 기온에도 냉해 피해를 보게 된다. 사과의 경우 과실을 키우기 위해 중심화를 남기고 주변 꽃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재배하는데, 이 중심화가 냉해로 얼어버리면 수확이 어려워진다.
특히 사과 주산지인 경북 지역은 최근 잇따른 대형 산불에 이어 냉해까지 겹치면서 농가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경북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농부 김모 씨는 “꽃이 수정되어 열매를 맺으려면 일정 시간 동안 바람이 없어야 하고 기온·습도도 적절해야 한다”면서 “최근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꽃이 열매로 자라기도 전에 져버리는 경우가 많아 열매 자체가 많이 맺히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배 농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주요 산지인 전남 나주와 경북 상주 등에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 날이 많아 서리로 인한 냉해는 물론 꽃 자체가 얼어버리는 동해 피해까지 겹쳤다. 농협중앙회장이 지난달 30일 경북 상주를 찾아 냉해 피해를 본 배 농가를 방문하고 피해 상황을 점검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강인규 경북대 원예학과 교수(경북사과수출농업기술지원단 단장)는 “상주 지역의 경우 심하게는 배꽃이 70% 이상 죽었다”라며 “배는 상주가 주산지인데 이번 피해로 생산량이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지금은 ‘잠잠’하지만…냉해 작물 출하 시점부터가 변수
현재 농산물 가격은 비교적 안정세다. 시중에 판매되는 사과·배는 대부분 지난해 수확해 저장된 물량으로 이번 냉해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달 말 사과 중도매 가격(후지·상품·10kg 기준)은 8만9320원으로 전년(10만1227원) 대비 12% 떨어졌다. 배 중도매 가격(신고·상품·15kg 기준)도 9만4720원으로 전년(13만4333원) 보다 29% 낮아진 상황이다.
문제는 냉해 피해를 본 과일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는 여름·가을 시점이다. 개화기에 냉해를 입으면 착과율이 떨어지고 크기나 당도 등 품질 저하로 이어져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여름철 태풍과 폭우, 9월 고온 현상 등 추가적인 기상 악재가 더해질 경우 물가 불안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향후 과일값 폭등이 예상되면서 유통업계는 이미 대책 마련에 나선 모양새다. 이마트는 전북 장수, 무주 등 다양한 산지로 공급처를 확대하는 한편 비정형 과일을 중심으로 한 가격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정형 과일은 프레시센터를 통해 비축하고 지속적인 판촉 행사도 병행할 계획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도 “냉해 피해로 올해도 사과, 배 가격이 높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산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사전 물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