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선 후보, 기후·에너지 정책 대전환 예고

4 days ago 4

기후·에너지 거버넌스 개편과 산업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한 이재명 후보가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한국판 IRA법 제정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이 대대적으로 변화할지 주목된다.

[한경ESG] 이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사진=뉴스1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기후·에너지 정책 구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조직개편, 에너지믹스, 산업 정책, 기후 재정 등 네 축에서 대대적 변화가 예고된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복수 부처에 흩어진 기후·에너지 기능을 통합하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새 정부의 조직개편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4월 18일 더불어민주당과 국회 복수 의원실에 따르면 이 후보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과 환경부 일부 기능을 통합해 ‘기후에너지부’로 이관하고 산업·통상 기능은 ‘산업통상부’로 재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기후·에너지 거버넌스를 개편해 정책 효율성,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는 과거 민주당 최고위 회의에서 “재생에너지 없이는 기후 위기 대응도, 경제의 지속적 발전도 불가능하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에너지믹스, ‘감원전’에서 물러서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믹스 정책은 과거 ‘감원전’ 노선에서 최근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에너지믹스’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안규백 이재명 후보 캠프 특보단장은 지난 4월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합한 에너지믹스가 중요한 시대적 화두”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전력 집약 산업의 성장을 고려해 현실적 접근을 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노후 원전의 조건부 수명연장이 추진될 가능성도 열렸다.

이재명 후보 캠프 안팎에서도 에너지 정책의 방향 전환 기조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후보의 외곽 정책 자문 그룹인 ‘성장과 통합’ 유종일 상임공동대표는 4월 16일 출범식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합리적 에너지믹스 정책이 필요하다”며 “과거 산업 정책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4월 15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열린 간담회를 통해 “우리나라도 소형모듈원전(SMR), 핵융합 등 미래에너지 기술이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며 “제대로 된 원자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재명 후보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현실적 에너지믹스 전략, 즉 원전과 재생에너지 병행 노선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한국판 IRA법과 기후 재정

이 대표가 당선될 경우 민주당 공약에 기반한 ‘한국판 IRA(탄소중립산업법)’ 제정과 기후 재정 체계 정비도 본격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기술을 국가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지난 총선 공약에 포함한 바 있다. 기업의 친환경 투자 참여를 늘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유럽연합(EU)의 그린딜 정책과도 발맞추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이차전지 포럼 대표인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재명 후보의 대선공약에 이차전지 산업 육성 정책이 중점적으로 포함될 예정이며, 한국판 IRA에 해당하는 ‘직접환급제’도 추진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신 의원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은 영업이익이 나지 않아도 기업이 세액공제액만큼 현금으로 환급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 재정 부문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총선에서 그는 2027년까지 기후 위기 대응 기금 7조 원을 확보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캠프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후 금융 공사를 신설해 녹색 전환에 필요한 마중물 투자를 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은 일본의 GX(녹색 전환) 컨소시엄처럼 국채를 발행해 충당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북, 친환경 산업 거점

이 대표는 대구·경북을 차세대 첨단산업과 녹색 성장의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지역 산업 공약도 발표했다. 그는 4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경북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요람”이라며 “이차전지, 바이오, 수소, 친환경 섬유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통해 지역 산업 전환과 제조업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구미(LG화학), 포항(소재 R&D), 대구(순환소재 파크)를 연결한 이차전지 산업벨트를 구축하고, 자동차 부품 기업의 친환경 전환을 위한 R&D 센터 및 스마트 생산설비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대구 첨단 의료 복합 단지를 ‘한국형 바이오·백신 클러스터’로 육성하고, 포스텍 및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중심의 기술개발과 인재 양성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포항은 ‘수소-철강-신소재 특화지구’로 조성해 수소환원 제철과 수전해 설비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대구 섬유산업의 친환경 전환도 지원하기로 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녹색 산업 정책”이라며 “이는 박정희 개발 체제 시절처럼 특정 산업을 발굴·육성하고 외국 기술을 모방하는 방식의 산업 정책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한다”며 “이제는 국가가 특정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기보다 산업구조 전반의 녹색 전환을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후특위 등도 이 후보 정책에 힘 실어줘

한편 국회가 이 후보의 정책에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기후특위)는 3월 13일 제22대 국회 본회의에서 구성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며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 이로써 기후특위는 탄소중립기본법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법 등 핵심 기후 입법을 직접 심사·처리할 수 있는 입법권을 확보했다.

더불어민주당 기후 행동 의원 모임 ‘비상’도 이 후보의 정책을 뒷받침한다. 2024년 6월 5일 출범한 ‘비상’은 기후 위기를 인류의 ‘비상(非常)’ 상황으로 규정하고, 의정 활동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목표 아래 구성됐다. 이소영 의원을 대표로 박지혜, 한정애, 김성환, 김정호, 위성곤 등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탄소예산 제도 도입, 탈화석연료 로드맵 마련, 기후예산 심사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기후 행동 모임 비상의 한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의 기후 어젠다는 탈탄소를 달성하는 동시에 산업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투트랙 전략’으로 요약된다”며 “이번 조기 대선은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한국의 기후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