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교수, '할머니 뇌졸중'이 바꾼 진로…"전자회로처럼 뇌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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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형 교수가 미국 뉴베라 인스티튜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인엽 특파원

이진형 교수가 미국 뉴베라 인스티튜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인엽 특파원

“뇌가 고장났을 때 회로를 분석해서 고치면 왜 안돼?”

한국 여성 최초의 미국 스탠퍼드대 종신교수인 이진형 교수(50)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거쳐 스탠퍼드대 전기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어릴 적 자신을 금지옥엽처럼 키워준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는 온갖 방법을 찾아봤지만, 해답이 없는 상황에 절망했다. 병상에서 재활밖에 할 수 없는 외할머니를 보며 이 교수는 뇌 신경은 왜 전자회로처럼 고칠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전기전자공학 박사 과정까지 마쳤지만 진로를 신경과학으로 과감히 틀었다.

7일(현지시간) 이 교수를 만난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뉴베라 브레인 헬스인스티튜트’는 “뇌질환 환자를 돕겠다”는 그의 사명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2013년 스타트업 엘비스(LVIS)를 창업한 이 교수는 환자의 뇌를 디지털 트윈으로 제작해 질병 발생 부위를 파악하는 ‘뉴로매치’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십수 년간의 추가 기술 개발과 규제 승인 절차를 거쳐 뇌질환을 검사·치료하는 뉴베라를 올해 초 열었다. 이 교수는 “앞으로 뉴베라 같은 진료 허브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로매치는 보이지 않는 뇌의 신호 흐름을 컴퓨터에 재현해 어떤 부위가 활발히 작동하는지, 혹은 신호가 끊겼는지 파악하게 하는 기술이다. 엘비스라는 사명도 ‘뇌 회로의 생생한 시각화(Live visualization of brain circuits)’에서 따왔다. 과거 진단이 ‘치매 증상이 있다’는 결과론에 그쳤다면 뉴로매치를 통해 ‘뇌의 A 지점과 B 지점 사이의 신호 밸런스가 깨졌다’는 구체적인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뉴베라에서는 진단과 약물 처방·초음파·전자기장 치료 등이 이뤄지고 필요 시 다른 병원과 협진한다.

이 교수는 “주변 지인을 검사해보면 상당히 많은 이가 숨은 뇌 질환을 앓고 있다”며 “이상 징후를 미리 발견하고 일반 병원에서 파악하기 힘든 질환을 찾아내는 것이 뉴베라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뇌 연구가 차세대 AI 모델 개발에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금까지 AI가 걸어온 길은 뉴런 구조를 본뜬 ‘뉴로모픽’이었지만 이상적으로는 뇌 구조를 흉내 내는 ‘브레인모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AI 기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에너지 효율이 낮아 막대한 전력 인프라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라며 “뇌의 가장 중요한 설계 원칙인 ‘에너지 효율’을 이해해야만 차세대 AI를 제대로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동양인과 여성으로, 뇌과학 분야의 전자공학 출신이라는 ‘3중 소수자’라는 장벽을 딛고 2017년 스탠퍼드대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2019년에는 미 국립보건원이 최고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파이어니어상’을, 지난달에는 기술 혁신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에디슨 상’까지 수상했다. 이 교수는 “소수자로서 어려운 순간이 있었지만 불리하면 불리한 대로 열심히 살자는 마음으로 극복했던 것 같다”며 “한국 여성 엔지니어라는 정체성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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