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과 스페인 민속춤인 플라멩코의 만남을 그린 무용 ‘아파나도르’는 스페인 국립플라멩코발레단에 신세계를 열어줬다. 콜롬비아 사진작가 루벤 아파나도르가 플라멩코 무용수들을 촬영한 흑백 사진집에서 영감을 얻어 연출가 마르코스 모라우가 무용으로 탄생시킨 이 작품은 2013년 초연한 이후 세계 각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지구 반대편 무용단의 폭발적 에너지가 지난달 30일과 1일 이틀간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총 3회 재현됐다. 최근 만난 무용수 윤소정(31·사진)은 스페인 국립플라멩코발레단의 유일한 한인 무용수다. 그는 단원들과 함께 내한 공연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파나도르는 플라멩코 하면 떠오르는 붉은색에서 벗어나 흑백,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담아냈어요. 검은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아름답고도 거친 몸짓, 의자와 교수대 등을 오브제로 활용한 파격적인 무대 구성이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 거 같아요.”
생후 7개월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살아온 윤소정은 스페인의 민속 무용을 배웠고 스물다섯이던 2019년 국립플라멩코발레단에 입단했다. 아시아인 최초 입단이었고 지금도 한국인 무용수로는 유일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함께 방한한 루벤 올모 예술감독은 “오디션에서 윤소정의 춤을 봤을 때 이미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윤소정은 “아파나도르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익혀 온 스페인 무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며 “사진집에 수록된 과장된 오브제를 댄서의 움직임으로 극대화하는 작업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단에 이르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스페인 국립플라멩코발레단은 1978년 설립됐다. 스페인 내에서 발레(ballet)라는 단어는 춤 또는 무용단을 의미하기에 클래식 발레에 한정하는 단어는 아니다. 이곳에서는 플라멩코를 비롯한 스페인 전통무용의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이 가미된다. 민속춤, 민속춤에 발레 테크닉을 섞은 에스쿠엘라 볼레라, 춤 기타 노래가 어우러진 안달루시아 지방의 플라멩코, 이 모든 영역을 섞어 동작을 새롭게 창작한 고급 무용 등 네 가지 형식을 넘나드는 것이 이 무용단의 장점이자 특징. 윤소정은 “다양한 움직임을 터득한 무용수로 구성돼 있기에 탱고나 살사 등 새로운 무용을 배우면 단원들이 금세 습득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춤은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감성적인 표현’이 요구되는 예술입니다. 즉흥적인 움직임이 많아 항상 도전적인 자세로 춤을 춰야 하죠. 익숙하지만 항상 새로운 게 아파나도르라는 작품이에요. 예술감독님은 작품을 연습할 때마다 단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현대적 해석이라고 해서 스페인만의 색깔을 잃어선 안 된다’고요. 저 역시 그 생각에 공감합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