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도, 쓰기도, 요약도 AI로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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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도, 쓰기도, 요약도 AI로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온다

입력 : 2026.06.26 16:38

SNS·AI 보급에 독서량 급감
英 성인 35% "이젠 책 끊어"
복합적인 읽기 포기한 인간
입체적 사고 능력까지 상실

로댕의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뒷모습. AI가 글쓰기와 읽기를 대신하면서 인간은  '프롬프트 작성자'로 전락하고 있다.  블룸버그

로댕의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뒷모습. AI가 글쓰기와 읽기를 대신하면서 인간은 '프롬프트 작성자'로 전락하고 있다. 블룸버그

"요즘 소설 한 근(斤)에 얼마나 합니까?" 오래전 한 소설가가 취재 과정에서 한 사내로부터 받은 무례한 이 질문은 요즘도 회자된다. 무게를 잴 수 없는 소설을 정량화해 값을 매기려는 물음은, 소설가라는 직업과 무력한 소설 쓰기, 더 무력한 소설 읽기를 싸잡아 비웃는 조롱이었다. 하지만 저 질문은 오늘 더 유효해 보인다. 우리가 뭔가를 읽거나 쓰는 일을 기계, 즉 인공지능(AI)에 외주화하는 시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나오미 배런의 신간 '읽지 않는 사람들'은 AI가 잠식해버린 오늘날의 세상을 질문하면서 "읽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시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이다. AI가 글쓰기와 글읽기를 대신하면서 인간이 독자가 아니라 '프롬프트 작성자'의 지위로 바뀐 오늘날을 경고하는 책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읽지 않는 사람들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만2000원

읽지 않는 사람들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만2000원

인간의 읽기와 AI의 읽기는 겉으로만 봐선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문학 작품이든 역사서 한 권이든 혹은 경제학 저서든 프롬프트를 통해 확인한 '줄거리'는 인간에게 즉각적인 만족감과 효능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읽기 능력과 AI의 읽기 능력은 전혀 다르다고 본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우리의 정신은 '문장, 문단, 쪽, 장'으로 이뤄진 더 큰 직조물 속으로 진입한다. 반면 요약문을 전달받아 내용만 훑는 책 읽기는 의미의 생성과는 무관하다.

"AI는 통계적 예측을 실행할 뿐이지 의미를 생성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인간의 분투는 요약본에 없다. 독서에서 통용돼야 하는 화폐는 노력이다."

성인 한 명이 1년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는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은 뉴스지만, AI가 인간의 독서 능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 통계는 작지 않은 충격을 준다. 책은 영국의 한 통계를 인용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성인의 35%가 '이탈 독자'로 자신을 표현했다. 한때는 책을 읽었지만 이제 더는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 중의 상당수가 독서를 그만둔 결정적 계기가 소셜미디어 사용이었다. 굳이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 책을 읽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인간의 자유로운 독서는 자연발생적으로 주어진 필연적인 혜택이 아니었다. 독서는 인간이 피투성이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수백 년에 걸쳐 가까스로 이뤄낸 성취였다. 1500년대 영국의 문해율은 남성이 10%에 불과했고, 이 비율이 90%를 넘어선 건 무려 400년이 지난 1900년대였다. 양피지의 시대를 지나 구텐베르크의 시대를 건너면서 책을 읽기까지 '400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특히 여성은 문해력 습득이 아예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7개 언어를 읽고 말하는 수준이었지만 평범한 여성의 독서는 '건강에 해롭다'는 낭설 때문에 금지됐다.

사람이 아니라 사유재산이었던 흑인은 또 어떤가. 하와이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일꾼을 뽑을 때 읽거나 쓸 줄 아는 사람은 돌려보냈다. 또 흑인들은 1868년 투표권을 부여받고도 투표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수직선을 이등분하되 수직선 중점에서만 직선이 되는 수평선으로 분할하라' 따위의 문해력 시험 문항 30개를 10분 만에 풀어야만 투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쟁취한 독서의 힘은, 이제 AI가 차지하고 있다. AI 대규모언어모델(LLM)은 '0과 1의 세계로 이뤄진 무한대의 도서관' 지위를 점하는 중이다. 지금이야 공공도서관이 '무료'지만, 무료 도서관의 역사는 오래된 게 아니어서 사람들은 책을 구매할 돈이 없으면 회원제 도서관에 가입해야 했다. AI LLM은 일반 도서관처럼 발걸음을 옮긴 필요도 없이, 검색창에 저서명이나 저자명을 타이핑할 이유도 없이 인간에게 '답'을 전해준다.

AI로 인해 세계를 보는 행위는 당장은 편리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으므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복잡한 읽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사회의 복잡성도 포기하게 된다. 복잡해 보이는 책을 읽는 건 지식의 습득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불편함을 지나치지 않고 온몸으로 통과하려 할 때 인간은 지식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의 내부에 축적하게 된다. 저자는 책 읽기를 단순하게 마땅히 인간이 해야 하는 행위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일종의 '이해의 노동'으로 접근하며 이런 결론을 낸다.

"인간의 사고 노력을 아낀다는 것. 정신이 공짜로 휴식을 누리는 게 아니라 사고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참고로 서두에서 언급한 소설가는, 자신에게 모욕적인 질문을 던진 사내를 자신의 소설 속 인물로 배치해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훗날 교과서에도 실리게 된다. 그는 "소설 한 편이 쇠고기 한 근보다 더 가치를 지닌 일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이고, 그의 이름은 윤흥길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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