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밤을 뜨겁게 달구는 행사장에서 그룹 블랙핑크 멤버 지수, 제니, 로제, 리사 4명이 완전체로 뭉쳤다. 지난 1월 말 월드투어의 피날레였던 홍콩 카이탁 스타디움 공연 이후 약 3개월여 만에 4명의 멤버들이 한 공간에 모인 것. 블랙핑크뿐 아니라 4세대 대표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와 닝닝, 그리고 글로벌 대세 배우 안효섭 등의 모습도 포착됐다. 세계 최대 패션 자선 행사 '멧갈라(Met Gala)' 현장이었다.
194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메트) 의상연구소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멧갈라는 패션계를 넘어 전 세계 대중문화의 향방을 가늠하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5월 첫째 월요일에 열리는 멧갈라는 어떻게 수십 년째 '패션계 최고의 밤'이라는 왕좌를 유지하고 있을까.
입장권만 1억4500만원…"돈 있어도 못 가"
멧갈라의 정식 명칭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코스튬 인스티튜트 갈라(Metropolitan Museum of Art Costume Institute Gala)'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시리즈에서 메릴 스트립이 맡은 미란다 역의 실제 모델인 보그(Vogue)의 전설적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1995년 주최를 맡으면서 지금의 형태가 갖춰졌다. 매년 메트 의상연구소의 봄 특별전 개막에 맞춰 열리며, 패션·엔터테인먼트·스포츠·재계 최상류층만이 참석할 수 있는 초청 전용 행사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메트 측이 밝힌 올해 1인당 입장료는 10만달러(약 1억4500만원)였다. 전년도(7만5000달러) 대비 33% 올랐다. 멧갈라 역사상 1인 입장료가 10만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인석 테이블은 35만달러(약 5억750만원)부터 시작한다. 1970~80년대 입장료가 1000달러 미만이었고, 1998년에도 2000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0여 년 만에 50배 이상 뛰어오른 셈이다.
특히 올해엔 빅테크 기업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아마존·메타·오픈AI·스냅챗이 각각 35만달러짜리 테이블을 구매했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배우자 로런 산체스와 함께 명예 의장으로 이름을 올리며 약 1000만달러(약 145억원)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의 영역이던 멧갈라에 실리콘밸리 자본이 본격적으로 진입한 첫 사례다.
다만 블랙핑크와 에스파 멤버들이 이 같은 입장료나 테이블 비용을 직접 부담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샤넬, 디올, 생로랑, 프라다, 구찌와 같은 명품 패션 하우스들이 테이블을 사들인 뒤 자사 전속 홍보대사를 초청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스타들은 사실상 무료로 입장하되, 해당 브랜드의 의상을 착용하고 레드카펫에 서는 조건이 붙는다.
올해 행사 참석 인원은 약 450명 정도로 알려졌다. 총 모금액은 4200만달러(약 609억원)다. 전년(3100만달러)과 전전년(2600만달러)을 연달아 경신한 역대 최고액이다.
실험적인 패션, 보는 재미 더해
올해 주제는 '코스튬 아트(Costume Art)'였다. 옷차림(의상)을 예술로 바라보는 메트의 봄 특별전과 연계된 테마로, 행사장 드레스코드는 '패션이 곧 예술(Fashion is Art)'로 설정됐다. 고전 조각상, 해부학 도해, 역사적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조형적이고 전위적인 의상이 대거 등장했다.
블랙핑크 제니는 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제작한 커스텀 드레스를 입었다. 1만5000장의 금속 장식 잎사귀를 한 땀 한 땀 꿰맨 이 드레스의 제작 시간은 540시간에 달한다. 제니는 레드카펫에서 "마치 모자이크 예술 작품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리사는 조각가이자 디자이너인 로버트 운이 만든 커스텀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 곳곳에서 뻗어 나온 팔 조형물은 3D 스캔 기술로 리사 본인의 팔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베일을 들어 올리는 이 팔들은 "신체가 곧 예술"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카리나의 프라다 드레스는 한국의 전통 복식인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의상뿐 아니라 이들이 몸에 착용한 장신구 역시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 출연한 에밀리 블런트는 일본 진주 전문 브랜드 미키모토(Mikimoto)의 진주 장식을 목과 가슴에 걸고 등장했는데, 해당 장식은 정가 약 50만달러(약 7억2500만원)였다. 수천 알의 아코야 진주와 21.85캐럿 모르가나이트, 45.97캐럿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희귀 피스다.
멧갈라에서 의상은 브랜드가 제공하거나 직접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참석자가 직접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다. 역대 최고가 의상 기록은 리한나가 2015년 착용한 중국 디자이너 궈페이(Guo Pei)의 드레스로, 제작 비용이 약 400만달러(약 58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멧갈라의 한국 스타 초청, 이유 있었네
블랙핑크 멤버 전원이 처음으로 같은 멧갈라에 참석한 것, 에스파 카리나와 닝닝이 데뷔 무대를 밟은 것, 배우 안효섭이 11년 만에 한국 남자 배우로 초청받은 건 단순한 '참석 이벤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멧갈라는 자선 행사이지만 철저히 흥행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 K-팝 스타는 '최고 효율의 마케팅 도구'다. 샤넬, 디올, 생로랑, 프라다, 구찌 등이 블랙핑크, 에스파 멤버들을 전속 홍보대사로 대거 기용하고 멧갈라 테이블까지 구매해 이들을 레드카펫에 세우는 건 아시아 전역에서 수천만 명의 팬덤이 실시간으로 그들의 의상을 들여다보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유럽 럭셔리 시장 조사기관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글로벌 명품 소비에서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소비자 비중은 40% 이상을 차지한다. K-팝 스타를 자사 얼굴로 내세우는 것은 이 거대한 소비층을 겨냥한 직접적인 마케팅인 셈이다.
실제로 올해 멧갈라 레드카펫에서 제니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언급량 기준으로 상위권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사실상 대체한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를 블랙핑크 멤버들이 독식했고, 중국 웨이보(Weibo)와 글로벌 X(구 트위터)에서도 관련 해시태그가 최상위권에 올랐다. 제니가 2024년 멧갈라 때 SNS 언급량 1위를 기록하며 1500만건 이상의 언급을 끌어냈던 전례를 올해도 이어갔다.
멧갈라에서의 의상과 존재감은 그 자체로 글로벌 패션 미디어에 노출되는 광고이자, 해당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아시아 팬덤에게 직접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브랜드는 스타를 통해 팬덤에 도달하고, 스타는 글로벌 패션 행사에서 존재감을 확인받는 상호 이익 구조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멧갈라 영향력은 굳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 소셜미디어의 부상, 종이 잡지의 쇠퇴로 미디어 지형이 급격히 변하고 있음에도 멧갈라의 파급력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20년 만에 돌아온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오프닝에서도 실제 메트 계단과 흡사한 세트에서 주인공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장면이 등장하며 여전히 대중문화의 뿌리 깊은 아이콘임을 입증했다.
멧갈라가 영향력을 유지하는 배경으로는 '희소성'이 꼽히고 있다. 멧갈라는 개인이 티켓을 사고 싶어도 주최자인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최종 승인이 있어야만 참석이 가능한 철저한 '초청제'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초청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행사장에는 휴대전화를 반입할 수 없다. 내부 촬영도 엄격하게 통제된다. 오직 주최 측이 허가한 공식 매체만이 내부 실황을 일부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금기는 대중의 관음증을 자극하며 행사의 희소성을 높인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디지털 시대에 "오직 그곳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은 멧갈라를 가장 세련된 마케팅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단순한 시상식이나 파티가 아닌, 예술 특별전과 연계된 지적·문화적 행사라는 정체성도 타 레드카펫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모금 활동까지 더해지면서 멧갈라의 존재감을 굳건하게 한다.
멧갈라 모금액 전액은 메트 의상연구소의 연간 운영비와 특별전 제작비로 쓰인다. 의상연구소는 메트 내에서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부서로, 멧갈라가 사실상 이 부서 1년 치 예산을 하룻밤에 마련해 주는 셈이다. 천문학적인 입장료와 화려한 의상 뒤에 '공익적 목적'이라는 방패가 있는 것이다.
멧갈라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엔터 관계자는 "멧갈라는 단순한 패션 행사를 넘어 산업이 움직이는 글로벌행사"라며 "국내 연예인들의 참석이 늘어나는 건, 앞으로 'K-문화'가 단순한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의미를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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