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도산공원 옆. 빌딩 사이로 석조 분수를 앞세운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이 서 있다. 육중한 검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성인 키 만한 거대한 꽃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곧이어 500여 권의 예술 서적이 비치된 공간이 등장한다. 왼편으로는 향 전문 브랜드 ‘테일러센츠’와 협업한 체스 말 모양 비누와 향초가 진열돼 있다. DL이앤씨가 지난달 문 연 ‘아크로 라운지 압구정’은 언뜻 고급 갤러리나 도서관을 연상시킨다. 벽 한편에 걸린 조감도 액자를 제외하고는 건설사가 만든 공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브랜드가 곧 입주민의 자부심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건설사 마케팅 전략이 ‘특정 단지 홍보’에서 ‘브랜드 경험 전달’로 옮겨가는 이유다. 사업지 인근 견본주택 대신 갤러리나 팝업스토어에서 젊은 층을 맞이한다. 브랜드 정체성을 담은 향기를 개발하고 스타벅스 협업 굿즈까지 선보인다. ‘브랜드 위의 브랜드’ 하이엔드 아파트 선호 현상도 마케팅 전략 변화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견본주택 대신 팝업스토어·갤러리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이달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양천구 목동에서 아파트 브랜드 ‘자이’의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성수1지구 재개발과 목동 오피스텔(옛 KT 부지) 등 올해 핵심 사업지 인근에 마련된다. 팝업스토어에서는 자이 특화 향기를 담은 방향제 등 굿즈를 선보인다. 후각뿐 아니라 촉각(수건), 미각(커피) 등 오감을 통해 자이의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통상 건설사가 분양 일정에 맞춰 견본주택을 열고 고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팝업스토어는 젊은 층이 몰리는 장소로 향하는 게 차이점이다. GS건설 관계자는 “견본주택에 비해 작은 팝업스토어는 특정 분양 단지에 국한되지 않는 브랜드 마케팅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지난해 성수동에서 대한민국 건설 역사와 3기 신도시를 소개하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복합문화공간도 브랜드 마케팅의 첨병이다. 포스코이앤씨와 롯데건설은 각각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서 복합문화공간 ‘더샵갤러리’, 한강 뚝섬공원의 ‘르엘어퍼하우스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GS건설의 브랜드 갤러리 하우스자이,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갤러리, 대우건설의 써밋 갤러리도 강남권에 있다.
다소 딱딱한 건설사 이미지를 벗기 위해 굿즈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스타벅스 코리아와 협업해 자사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의 한정판 제품을 12개 힐스테이트 단지 입주자에게 제공했다. 가방, 돗자리, 반려견을 위한 배낭 등이다. 힐스테이트의 상징색인 와인색을 디자인에 적용했다.
○분위기 전환하는 향기·음악 ‘단골 소재’
하이엔드 아파트 브랜드 홍보에는 향기와 음악이 단골 소재다. 공간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전환하는 효과를 즉각 낼 수 있어서다. 포스코이앤씨는 글로벌 향기 마케팅 기업 ‘아이센트’와 협업해 시그니처 향기 ‘오티에르 엘릭서’를 개발해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 커피 브랜드인 ‘앤트러사이트’와 함께 시그니처 커피인 ‘플로르’도 선보였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한 음악 앨범까지 발매한다. 오티에르 브랜드를 표현한 음악 ‘포 오티에르’는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인 정재일 감독과 함께 제작했다. 대우건설 역시 지난해 하이엔드 브랜드 ‘써밋’을 표현한 음악 앨범 ‘센스 오브 써밋’을 공개했다.
건설사가 이색 브랜드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건 최근 아파트 브랜드가 분양과 재건축·재개발사업 수주의 희비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재개발 조합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하며 기존 시공사와 갈등을 빚고 사업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잇따를 정도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에서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 수주전이 한창인 가운데 이제 집을 잘 짓는 건 기본이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아파트 브랜드’를 갖춘 건설사를 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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