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에서도 '무풍지대'였던 태국에서 뒤늦은 '미투 운동'이 일고 있다. 태국의 유명 재벌 4세가 어렸을 때 친형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 당사자가 기업에서 물러난 사건을 계기가 됐다.
26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네이션·카오솟 등 외신에 따르면 이달 초 태국 재벌가 비롬박디 가문의 4세인 환경운동가 시라누드 스콧(29)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을 통해 자신의 친형 수닛 스콧이 과거 자신을 여러 차례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폭로했다.
시라누드는 "가족 모두 내가 녹음한 형의 고백 테이프를 들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조처를 하지 않았다"면서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공감도 해주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주장했다.
시라누드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9∼13살 때 형이 여름 방학 동안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약 3년 전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을 지키는 대가로 받은 금전적 보상이었다.
시라누드는 올해 자신의 어머니가 재산 분쟁으로 자신을 고소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폭로로 논란이 일자 비롬박디 가문의 핵심 기업이자 태국의 '국민 맥주' 싱하 맥주를 생산하는 분라웃은 수닛을 사내 모든 직위에서 해임했다.
분라웃은 성명에서 "시라누드 스콧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고, 분라웃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던 수닛은 물러나면서 형제 사이에 '거친 놀이'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성폭력 혐의는 부인했다.
이들 형제는 비롬박디 가문 창업자의 외손녀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4세다.
이들이 속한 비롬박디 가문은 싱하 맥주 외에도 식품·호텔·전력·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한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가문의 순자산 규모는 약 17억5000만 달러(한화 약 2조6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도에 따르면 시라누드의 폭로로 파문이 일면서 태국 사회의 각계 인사들이 오랜 금기를 깨고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개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테일러 스리랏은 19세 때 50대 직장 상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으며, 태국 유명 골프장 후계자는 11살 때 운전기사의 성폭행으로 임신한 뒤 임신중절을 했다고 고백했다.
온라인에서는 시라누드가 미투 운동의 물꼬를 텄다면서 그를 가리키는 '#PsiScott'(Psi는 시라누드의 별명) 해시태그와 함께 그에 대한 공감과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메시지가 오가고 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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