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이사하던 날 삼킨 눈물”…산업자동화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의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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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기 전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장(여의시스템 대표) 인터뷰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가 ‘도전’이라는 글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가 ‘도전’이라는 글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아들의 백혈병, 아내의 유산과 폐결핵, 본인 위암까지. 창업 3년 사이 연이어 몰아 닥친 시련 앞에서 그는 집을 팔아 병원비와 직원 월급을 마련해야 했다. 전셋집으로 이사하던 날 참담한 눈물을 삼키며 무너지는 회사를 붙잡았다. 이 남자는 이후 대한민국 산업자동화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

성명기 전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 회장의 배경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40년의 서사가 있다. 만 72세에도 그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의 문 앞에 서 있다. 그에게 어떤 가혹함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피지컬 AI, 협동로봇, AI인프라 솔루션.”
남들은 “편안한 노후”를 말할 때, 그는 다시 “도전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끄는 여의시스템은 산업 현장의 ‘두뇌’ 역할을 하는 자동제어 시스템을 만든다. 스마트폰·반도체 제조장비, 주차관제, 도로속도감지시스템, 약국자동화 장치 안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물밀듯 밀려오는 중국 제조업과 플랫폼 속에서 국내 중소기업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이 회사는 초고도 성장을 기록 중이다. 올해 5월까지 매출이 전년 대비 60% 이상 신장했다. 비축해둔 현금 동원력과 기술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으도 돌려주기도 한다. 누적 기부금은 1억 3800만 원에 이른다.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가 아프리카 후원과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습.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가 아프리카 후원과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습.

“특별한 일 없는 하루는 감사한 날”

어린시절 라디오 조립에 빠져 살던 그는 ‘문과’가 대접받던 시절 전자공학의 길을 택했다. 개인 컴퓨터(PC)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84년, 8비트짜리 애플 컴퓨터 부품을 조립해 파는 ‘구멍가게’를 여의도에 열었다. 미래 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본 선택이었지만 간신히 적자만 면했다.

“원래 구멍가게는 동네 이름을 붙이잖아요. 그래서 ‘여의’예요. 지금은 물론 ‘여의주’ 뜻이지만 시작은 그랬어요.”

안목은 적중했다. 얼마 후 집집마다 ‘퍼스널 컴퓨터’ 바람이 불며 주문이 폭주했다. 당시 대졸 초임의 10배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어느날 한 스터디그룹 리더(현재 유명 기업인)가 가게를 찾아와 기술적 난제를 물어봤고, 단번에 해결해 줬다. 그 인연을 계기로 단순 PC판매를 넘어 ‘산업용 자동제어 시스템’ 개발로 눈을 돌렸다. 각종 연구소에 입소문이 나며 개발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큰아들의 백혈병, 충격으로 인한 아내의 둘째 유산과 폐결핵, 자신의 위암까지 30세가 되기도 전에 불행이 한꺼번에 덮쳤다.

“내가 죽으면 누가 아들 치료비를 벌까? 누가 아내를 지켜줄까?”

그때부터 생존은 성공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다행히 가족은 모두 기나긴 죽음과의 전쟁을 이겨냈다. 그리고서 깨달은 진리는 “평범한 삶에 감사하자”였다.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는 감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산을 사랑하고 도전을 즐기는 성명기 대표가 암벽을 등반하고 있다.

산을 사랑하고 도전을 즐기는 성명기 대표가 암벽을 등반하고 있다.

“박사보다 위대한 사람은 밥사는 사람”

성 전 회장은 대체로 약속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곳에 먼저 자리 잡는다. 그의 소탈함과 사람 대하는 태도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어머니는 겨울이면 거지에게 뜨거운 밥을 주기 위해 집을 나서곤 했다. 어린 아들은 졸졸 따라다니며 지켜봤다. 어느날 동네 불량배들이 어머니 가게에 찾아와 돈을 뜯으려 했을 때, 무리의 우두머리가 어머니를 알아봤다.

“아지맨교? 저 그때 밥 얻어먹었던 놈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결국 기술보다 더 강했던 것은 사람에 대한 태도였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성과 역시 함께 만든 결과라고 믿는다.

“박사보다 대단한 사람은 밥사는 사람이다”
“나는 박사가 아니지만 내 밑에 박사가 오천명이다.”
그가 우스갯소리로 인용하는 말은 그의 운영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리더가 자기 역량 안에서 사람을 통제하려면 결국 조직은 멈춘다고 본다. 그래서 “대표보다 잘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주문한다.

창업 시절의 성명기 대표.

창업 시절의 성명기 대표.

“아들 대체 복부 NO!…제일 힘든 곳으로”

현재 회사 공동대표로 경영에 참여 중인 둘째 아들(41)도 독특한 방식으로 키웠다. 아들은 산업기능요원으로 편하게 대체복무를 할 수 있었지만 이른바 ‘빡센 군대’를 다녀왔다. 아버지의 남다른 교육 철학 때문이었다.

성 전 회장은 투병으로 진도가 쳐진 큰아들과 공부에 무관심던 둘 째를 모두 ‘개인 교사’가 돼 가르쳤다. 그러기 위해 까맣게 잊은 국영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애비가 수능을 다시 치르는 꼴이 됐어요. 둘째 녀석이 어릴 때 얼마나 농땡이를 부렸는지…평소에 ‘너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돼’라는 잔소리를 했어요.”

그러나 막상 스무살이 됐을 땐 산업기능요원으로 넣어주겠다는 주변 제안들이 들어왔다. 성 전 회장은 일언지하에 “NO”라고 거절했다. 그렇게 입대했는데 얼마 후 건강문제로 귀향 조치됐다.

그는 다시 아들을 설득해 재 입대 시켰다. 그것도 가장 힘든 곳, “원통해서 못산다”는 ‘강원도 인제’ 최전방.

성 전 회장은 “그때 아들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떠올렸다.

“어느날 중대본부 컴퓨터가 고장났는데 그거 여럿이 붙어가지고도 못 고치는데 우리 아들이 주무르다가 딱 고친거에요. 그러니 중대장 연대장 할 것 없이 컴퓨터 문제만 생기면 다 연락 하는거에요.”

군부대에서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놈아가 완전히 루저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 피를 이어받았나봐요. 휴가 나온 녀석이 가족 투병기 자서전을 읽어보고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대요.”

아들은 지난해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자문위원과 임원들이 ‘한번 맡겨보세요. 잘할 겁니다’라고 해서 시켜봤는데, 잘하고 있나봐요.”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는 제6대와 제8대 중소기업기술혁신(이노비즈)협회장을 역임했다.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는 제6대와 제8대 중소기업기술혁신(이노비즈)협회장을 역임했다.

두 번의 이노비즈 협회장…”인재를 붙잡아라”

그는 두번의 정부(문재인/박근혜)에서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회장을 역임했다. 협회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간곡한 요청 끝에 응했는데, 다음 정부에 또다시 추대됐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주말이면 등산을 즐기는 그는 “협회장 시키면 탈퇴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게다가 CEO들이 협회장을 하고 나면 정작 경영에는 소홀해지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떠밀리듯이 이노비즈 협회장을 맡은 그는 ‘인재’ 확보를 핵심 과제로 뒀다. 이노비즈 기업군들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 개발 역량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게 절실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고급 인력을 중소기업에 지원해 주십시오. 기술 인력이 없으면 중소기업은 미래가 없습니다.” 대통령을 향한 진심 어린 호소는 통했다.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 설립이라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경기도 성남시 여의시스템 본사

경기도 성남시 여의시스템 본사

혹독한 세무조사…결과는 국세청 표창”

성 전 회장은 지금도 낡은 배낭 차림으로 걸어 다니는 것을 즐긴다. 회사 관계자는 “회장님도 사모님도 골프복 1만 9000원짜리 입으신다. 근처에서 팔다 남은 그런 거 사고 너무 행복해 하신다”고 말했다.

돈에 있어서 누구보다 떳떳하지만, 한때 혹독한 세무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언젠가 정부 정책에 개인적 생각을 악의없이 말했는데, 그게 ‘정면 반박’했다는 식으로 언론에 와전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후에 강도높은 세무조사가 들이닥쳤다.

한 달에 걸쳐 조사했으나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었다. “한달 더 연장 하겠다기에 내가 ‘1년 더 연장하라’고 했어요. 우리 집사람하고 나를 다 뒤졌는데 소위 말해서 명품 하나 산 거도 없었어요. 결국 빈손으로 종료했는데, 나중에 국세청장 상을 주더라고요.”

성명기 대표가 경기도 성남시 여의시스템 본사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성명기 대표가 경기도 성남시 여의시스템 본사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운칠기삼? “맞는 말 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외인 지점이 하나 있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음에도 자신의 성공을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주 꺼내는 단어는 ‘운’이다. 인생은 철저히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예상치 못했던 우연이 더 많았다.

다만 “운은 앞머리만 풍성하고 뒷머리가 없다”고 정의했다. 왔을 때 붙잡을 준비가 돼 있어야지 지나버리면 잡아챌 뒷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미쳐서 여의도에서 구멍가게를 차리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찾아온 귀인을 만날 수 없었고 지금의 회사도 없었다.

그에게 ‘성공한 인생을 살았느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늘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삶을 ‘성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한다.

“열정을 다해 살았고, 남은 삶도 그렇게 살 겁니다.”

이 시리즈는 숫자와 실적 뒤에 가려진 기업가들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실패와 위기, 기술과 사람,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선택까지. 치열한 시대를 건너온 대한민국 기업인들의 삶을 통해 ‘성공’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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