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1839~1906)은 현대 서양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하나로 꼽힌다. 별명이 '현대미술의 아버지'일 정도다. 그런데 막상 그의 그림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 그린 그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세잔의 작품은 사진처럼 정교하지도, 인상주의 그림처럼 서정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그의 초기작을 보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설적으로 세잔의 위대함은 이런 부족한 실력을 메꾸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한때 세잔은 인상주의자였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 클로드 모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탁월한 동료들을 인상주의 화풍으로 넘어서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세잔은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가 생각한 인상주의 작품의 약점은 ‘희미한 형태’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효과를 좇다 보니 사물의 형태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지나치게 흐물흐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그림의 어둡고 무거운 색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세잔은 인상주의의 풍부한 색감과 고전적인 견고함을 모두 잡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개발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의 ‘생 빅투아르 산’(1904~1906)을 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는 다른 화가들처럼 윤곽선을 긋고 안을 칠하는 대신 색을 바로 칠했다. 이렇게 칠한 색을 벽돌 쌓듯 차곡차곡 쌓아 화면 전체를 하나의 건물처럼 짜 맞췄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색을 앞으로, 차가운 색을 뒤로 배치해 깊이를 색의 온도로 표현했다. 그 결과 세잔의 작품은 평면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무엇이 멀고 가까운지를 알 수 있고, 색채가 풍요로우면서도 전체적으로 단단한 느낌을 준다.
2차원의 평면성과 3차원의 깊이, 색을 보고 느끼는 주관적인 인상과 객관적인 형체를 동시에 표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위해 세잔은 같은 주제로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며 실험에 매진했다.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생 빅투아르 산을 30번 넘게 그리고, 목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테이블 위의 정물 등을 수도 없이 그린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실제로 세잔의 작품은 색채 표현이 조금만 바뀌더라도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그는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이 볼수록 대단한 작가로 꼽힌다.
세잔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화가의 방식으로 세상을 재구성한다’는 발상이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닮아 있지만, 그 안의 법칙은 현실과는 명백히 다르다. 피카소, 마티스를 비롯한 후배 화가들은 세잔의 그림을 보고 깨달았다. ‘현실을 똑같이 베끼지 않아도 미술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를 만들 수 있구나.’ 그렇게 예술가가 자신의 마음대로 영감을 세상에 풀어놓는 현대미술의 문이 열렸다.
다만 이미지로는 세잔의 작품이 왜 탁월한지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인쇄물이나 화면에서는 따로 찍은 색 면들이 한 덩어리로 뭉개지고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진가는 실물을 멀리 봤다가 바짝 다가가 보기를 반복할 때 제대로 알 수 있다. 한 번쯤 그의 작품에 바짝 다가가 붓질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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