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후 2주새 고소·고발 44건
사법기관 협박 수단 전락하고
판결 불복 정치인 여론전 악용
'사기혐의' 허경영도 고소 예고
사건 지연·판결 위축도 문제
지난달 수도권에서 근무하던 A판사는 명예퇴직을 신청한 뒤 깜짝 놀랐다. 법원으로부터 "피고소인 신분이라 퇴직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유죄 선고에 앙심을 품은 피고인이 A판사 등 3명의 판사를 모두 법왜곡죄로 고소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자신도 몰랐던 '깜짝 고소'를 당한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사건을 각하한 뒤에야 가까스로 퇴직했다.
법왜곡죄 시행 3주가 넘어가면서 법조계에서는 "사법기관을 향한 겁박용 고소·고발이 난무해 법체계가 흔들린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형사사건의 실체적 피해자보다는 정치인 등 유명인의 불복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시행된 법왜곡죄로 같은 달 25일까지 2주간 총 44건의 고소·고발이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 수사관이 38명, 판사와 검사도 각각 30명이 입건됐다.
법왜곡죄는 판사나 검사, 사법경찰관이 형사사건에서 법을 왜곡해 처리하면 징역 10년 이하의 중형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과 함께 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법원이나 수사기관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법왜곡죄 시행 첫날 접수된 '1호 사건'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상이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판단할 때 7만여 쪽에 달하는 재판기록을 '지나치게 빨리' 검토했다는 이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특수활동비 옷 구매' 의혹을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처분하자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박철우 서울중앙지검장과 이주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김 여사를 서울경찰청에 고발하면서 "무혐의 처분을 하면 법왜곡죄로 경찰을 고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수사한 조은석 특별검사나, 윤 전 대통령에게 1심 무기징역을 선고한 지귀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역시 고발당했다.
고소·고발이 난무하면서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사건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공격당할 소지를 없애기 위해 판결문 등 서류를 최대한 간소하게 작성하는 방향으로 적응하고 있다.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히거나, 대법원 판례에 도전하는 선고를 한 경우도 공격 대상이 된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법에 따라 치열하게 공방한 뒤 결과에 수긍하고 법리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법왜곡죄가 부담스러워 책잡히지 않는 결론을 내리는 데만 집중하게 되면 사법 시스템의 발전이 있을 수가 없다"고 우려했다.
사건의 처리를 두고 법왜곡죄를 사용해 불복 소송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면,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거나 여론전에 나서는 경우에만 유리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기와 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다. 그는 지난 2일 의정부지법 재판에 출석해 "경찰 수사관들과 기소한 검찰을 법왜곡죄로 전부 끝까지 처벌해야 한다"며 "나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어서 수천억 원이 들어가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접수된 사건을 경찰이나 공수처가 적절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 있다.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 명확한 규정이 아닌 '법 해석'을 문제 삼아 경찰이 판사를 수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 사건을 경찰과 공수처가 들고 있는 것은 법왜곡죄의 소급 적용 문제도 있지만, 최고법원이 내린 고도의 판단을 뒤집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럼에도 각하해 버리자니 눈치가 보여 수사기관도 골머리를 앓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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